이인원 부회장, 은퇴 후 삶 계획했던 양평서 세상 떠나

인근 상인들 "이 부회장, 아침 뉴스보고 처음 알았다"
이 부회장, 힘든 일 있을 때 양평 찾아 머리 식혀
  • 등록 2016-08-26 오후 5:32:19

    수정 2016-08-26 오후 5:38:47

이인원(69) 롯데그룹 정책본부장(부회장)이 26일 오전 자신의 넥타이를 이용해 목을 매단 나무(맨 앞) 뒤로 식당과 모텔 등이 있다. (사진=고준혁 기자)
[이데일리 양평=고준혁 김보영 기자] 언제 폭염이 기승을 부렸냐는 듯 새파랗고 청명한 하늘 아래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26일 오후 경기 양평군 서종면 북한강로 391번 지방도로를 따라 유유자적 흐르는 강물에서 사람들은 땅콩 보트를 타는 등 수상레저를 즐기고 있었다. 분주한 잠자리는 가을이 코 앞으로 성큼 다가왔음을 알리고 있었다.

왕복 2차로 북한강로를 따라 3㎞가량 뻗어 있는 분홍색 아스팔트 산책로. 어른 보폭으로 다섯 걸음 정도 되는 너비에 오른쪽으로 북한강을 끼고 있는 이 산책로 입구에서 약 40m 떨어진 가로수 밑에서 이날 오전 7시 11분쯤 60대 남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롯데그룹의 2인자이자 신동빈 회장의 최측근인 이인원(69) 롯데그룹 정책본부장(부회장)이다. ‘롯데그룹 비리 의혹’ 수사와 관련, 검찰 소환을 앞둔 당일 아침이었다. 경찰은 “폐쇄회로(CC)TV 등을 분석한 결과 이 부회장이 전날 오후 10시쯤 자택인 서울 용산의 한 아파트에서 자신의 차(제네시스)를 타고 나와 서울춘천고속도로를 경유해 양평 지역에 도착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아침 운동을 나온 마을 주민이 이 부회장의 시신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발견 당시 이 부회장의 목에는 끊어진 넥타이 일부가 매여 있었다. 넥타이의 나머지 부분은 스카프와 연결된 채 부러진 나뭇가지에 동여매 져 있었다. 이 부회장이 목을 맨 나무는 그대로 방치돼 일반인들은 이곳이 사건 현장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이 부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산책로 바로 위쪽엔 왕복 2차로 도로를 사이에 두고 모텔과 카페들이 들어서 있었다.

이 부회장이 자신의 검은색 제네시스 차량을 주차했던 산책로 뒤편에 있는 식당 주인은 “아침에 언론사 보도 차량과 경찰차가 몰려드는 것을 보고서야 이 부회장이 자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 식당 건너 편에 있는 카페 주인도 “아침 방송을 통해 소식을 접했다”며 “(이 부회장의)얼굴도 뉴스로 처음 봤다”고 했다. 카페 주인은 또 “이곳에서 장사를 시작한 지 5년이 지났는데 이 부회장을 직접 본 적도 없고 주변 사람들 중에도 이 부회장을 봤다는 사람은 없다”고 덧붙였다.

이 부회장이 생을 마감한 이곳은 은퇴 후 제2의 삶을 시작할 장소로 염두에 둔 곳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은 주말마다 찾아와 이 곳에서 머리를 식히곤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직접 차를 몰고 부인과 함께 찾는 등 양평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고 한다.

이 부회장과 5∼6년 전부터 친구 사이로 지냈다는 강건국 가일미술관 관장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양평에 별다른 연고는 없지만 이 부회장이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있으면 이곳을 찾아 머리를 식혔던 것으로 안다”며 “여기엔 자기 집이 없어 낮에만 있다가 밤에는 집으로 돌아갔다”고 말했다. 이어 “이 부회장은 올 때마다 직접 차를 몰고 부인과 함께 왔다. 몸이 불편한 부인을 끔찍하게도 생각했던 것 같다”며 “산과 강이 있는 양평이 좋다며 은퇴하고 약 40평(132㎡)짜리 단층짜리 집을 짓고소박하게 살고 싶어 했다”고 안타까워했다.

이 부회장의 부인은 보름 전쯤 수술을 받고 현재 병원에 입원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종면에서 15년 넘게 살았다는 공인중개사 박모(55)씨는 “뉴스에 이 부회장이 은퇴 후 이곳에서 지내려고 땅을 사놓았다는 얘기가 나왔는데 이쪽은 아닌 것 같다”며 “이 동네 부동산 소식은 전부 듣는 편인데 그런 소식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의 차량 안에는 그가 직접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유서가 발견됐다. 유족과 롯데 임직원에게 보내는 형식의 유서는 A4용지 4매 분량으로 “먼저 가서 미안하다”는 등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 부회장의 아들은 경찰에 ‘최근 검찰 수사가 시작된 이후 가정사까지 겹치면서 (아버지가) 많이 힘들어 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이인원(69) 롯데그룹 정책본부장(부회장)의 시신이 발견된 분홍색 아스팔트 산책로 옆으로 북한강이 유유자적 흐르고 있다. (사진=고준혁 기자)
경기 양평경찰서 과학수사팀이 26일 이인원(69) 롯데 부회장의 차량을 감식하고 있다. 이 부회장의 차량에선 A4용지 4매(표지 1매) 분량의 유서가 발견됐다. (사진=고준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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