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한 지 100일도 안 된 권오준 회장은 어느 쪽 결론이든 ‘명분’이 필요하다. 공격적인 인수합병으로 ‘방만 경영’의 도마 위에 오른 전임 경영진과 선을 긋고 나선 권오준 회장은 취임 일성으로 철강 본연의 경쟁력 강화와 재무구조 개선을 외쳤다. 권 회장은 동부 패키지의 인수 건도 두 가지 관점에서 포스코의 이익에 도움이 될지 판단해 결정하겠다고 여러 차례 강조해왔다.
인수 쪽으로 가닥을 잡기에는 주변 환경이 만만치 않다. 우선 가격 차이가 많이 난다. 동부 측은 최소한 1조 5000억 원은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포스코에서는 7000억 원 밑으로 예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포스코 처지에서는 싼 가격이 아니면 무리해서 인수할 수 없다. 철강시장이 아직 풀리지 않는데다 재무적인 여건도 험악해지는데 잘못 인수했다간 모든 부담이 권오준 회장에게 쏟아질 수 있다.
최근 포스코는 국내에서 20년 만에 ‘최고 신용 등급’ 기업의 자리에서 밀렸다. 한국기업평가가 지난 11일 포스코의 신용등급을 ‘AAA(안정적)’ 에서 ‘AA+(안정적)’으로 한 단계 강등한데 이어 13일 한국신용평가와 나이스신용평가도 포스코의 신용등급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낮췄다.
인수에 부정적인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지만, 그렇다고 협상이 완전히 깨진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견해가 많다. 레이스가 막판에 다다르면서 산은과 동부, 포스코가 ‘가격’을 놓고 벌이는 신경전이란 해석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포스코가 동부패키지 인수가격을 7000억 원대 이하로 예상보다 더 낮은 가격대를 산은에 제시했다면 에둘러 결렬의지를 보였다기보다 인수할 수 있는 명분과 가격을 좀 더 협상해 보자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풀이했다.
아울러 동부인천스틸을 중국 등 외국업체 매각하면 국내 컬러강판 시장을 잠식할 우려가 있고, 업계 맏형인 포스코 외에는 이를 인수할 기업이 없다는 점도 쉽게 뿌리칠 수 없는 이유다. 특히 산업은행을 비롯한 금융당국이 최근 동부그룹 구조조정 속도를 내면서 동부패키지를 포스코에 팔겠다는 의지가 강한 점도 포스코를 압박하고 있다.
16일 포스코 관계자는 “사안이 중대한 만큼 의사결정에 시간이 걸린다”며 “검토 작업이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최종 인수보고서가 아직 권오준 회장에게 전달되지 않아 결정에 시일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종의사 결정에 필요한 시간을 좀 더 확보하는 동시에 이번 인수전에 필요한 명분을 좀 더 쌓겠다는 계산이다. 업계에서는 늦어도 이번 주 내 동부패키지 인수건에 대한 최종 결론이 나올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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