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 뚫은 엔화, 日 방위 예산도 위기 "30% 감소"

2년 전 방위비 2배 증액…환율 변동 예측 못한 日
108엔 기준 예산 집행…달러당 161엔 돌파
"항공기 구매 줄여"…"미국서 무기 구매력 감소"
  • 등록 2024-07-09 오후 3:52:03

    수정 2024-07-09 오후 3:52:03

[이데일리 이소현 기자] 달러당 엔화 값이 38년여 만에 최저치로 떨어지면서 일본의 전후 최대 군사 증강 계획이 위기에 처했다.

일본 시즈오카현 고템바의 히가시후지 훈련장에서 실시된 실탄사격훈련에 참가한 일본 육상자위대 소속 V-22 오스프리 수직이착륙기가 비행하고 있다.(사진=연합)
8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일본은 대부분의 군사 장비를 달러화로 거래하는 미국 기업에서 구입하기 때문에 엔화 가치 하락으로 방위 예산의 실질적인 구매력이 크게 감소했다고 보도했다.

엔화의 가치가 하락하면서 같은 달러 금액으로 구매할 수 있는 장비의 양이 줄어들게 된 것이다. 달러·엔 환율은 지난 3일 뉴욕 외환시장에서 한때 161.96엔까지 올라 1986년 12월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고 이날도 161엔 안팎에서 등락하고 있다.

앞서 일본은 북한의 미사일 위협과 중국과 대만 사이 갈등 우려에 대응하기 위해 대규모 군사 지출을 계획했다. 2022년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방위 예산을 2배 이상 증액하는 등 새로운 국가 안보 전략을 발표했다. 5년(2022~2027년) 동안 43조 엔 규모의 예산으로 적 기지를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 공격을 억제하는 것이 목표였다. 당시 방위비 확대는 미군 의존에서 벗어나는 획기적인 조치로 평가받았다. 기시다 총리는 대규모 군사 지출과 관련해 “일본 역사상 전환점”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환율 변동을 예측하지 못한 일본 정부는 최근 방위 예산 편성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22년 당시 방위비 증액을 정할 때 환율을 달러당 108엔 기준으로 설정했다. 그러다 발표 시점인 같은 해 12월엔 이미 135엔, 현재는 161엔까지 돌파했다. 원래 계획된 예산으로는 목표한 군사 장비를 구매하기에 턱없이 부족해진 것이다.

모리모토 사토시 전 일본 방위상은 NYT와 인터뷰에서 “실질적인 방위 능력과 애초 목표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며 “방위 예산이 5년 동안 실질적으로 30% 감소했다”고 말했다.

일본의 군사 대응 능력에 중요한 미국산 토마호크 미사일 등 구매 비용은 엔화 약세로 급증했다고 NYT는 전했다. 전문가들은 추가적인 방위비 삭감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군사 구매를 감독하는 정부 기관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타케우치 마이코 일본 경제산업연구소 컨설팅 펠로우는 “북한과 중국의 잠재적 위협에 대응하는 데 있어 엔화 약세가 미치는 영향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며 “일본산 군사 장비는 많은 내부 부품을 해외에서 조달하는데 일본은 이미 항공기 구매를 줄이고 있으며, 예산을 늘리지 못하면 더 많은 삭감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오른쪽)가 부인 유코 여사와 함께 6월 12일 도쿄 하네다 공항에서 전용기에 탑승하기 전 손을 흔들고 있다. (사진=연합)
일본 내에서 추가적인 방위 예산 조달 방안은 제한적이다. NYT는 “일본의 방위 예산은 2024년 이후 ‘적절한 시기’에 세금 인상을 한다는 모호한 계획에 의존하고 있다”며 “이 세금 인상은 이미 올해를 넘겼으며, 추가 인상은 기시다 총리의 역대 최저 지지율로 인해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중요한 군사 장비인 헬리콥터, 잠수함, 탱크 등의 구매를 줄이는 것은 방위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일본이 세금을 인상하지 못하고 부채를 증가시키지 못하는 상황에서 더 깊은 다자간 협력을 추구하는 것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일본은 미국, 호주 등 동맹국들과의 해양 훈련 등을 통해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모리모토 사토시 전 일본 방위상은 “일본이 재정적 제약 속에서 군사 증강을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며 올해 말까지 내년 방위 예산에 대한 권고안을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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