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이데일리 김연지 기자] 리걸테크를 바라보는 글로벌 자본시장 관계자들의 시선이 달라지고 있다. 리걸테크란 법률과 기술의 합성어로, 첨단 기술을 활용해 법조계 업무를 효율화하고 혁신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산업 초기에는 규제할 정도로 영향력이 있거나 성장하지는 않았다는 의견이 존재했으나, 현재는 리걸테크를 법률 시장 혁신에는 없어서는 안 될 동반자로 보고 있다. 리걸테크 산업이 성장 궤도에 올랐다는 평가가 이어지는 가운데 글로벌 투자사들은 관련 스타트업 발굴 및 투자에 바쁜 모습이다.
10일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피치북에 따르면 올해(1월 1일부터 12월 5일까지 기준) 글로벌 투자사들은 전 세계 리걸테크 스타트업에 3조 6500억원을 투자했다. 이는 1조 2800억원을 기록한 지난해 연간 규모의 약 3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올해 투자 규모가 유독 큰 이유는 인공지능(AI)의 급속한 발전과 시장 수요 변화에 따라 투자사들의 관심이 증가한 데 따른 것이다. 법률 문서를 분석하거나 계약서를 자동화할 때 활용되는 AI 기술이 발전할수록 리걸테크 산업도 덩달아 발전하는 구조이고, 글로벌 기업들이 복잡한 법률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리걸테크 솔루션을 속속 도입하면서 성장 잠재력을 인정 받은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 글로벌 투자사들은 올해 하반기 될성부른 리걸테크 스타트업에 큰 규모의 자금을 쏟아 부었다. 가장 최근 사례로는 영국의 리걸테크 스타트업 로하이브가 있다. 해당 회사는 최근 구글 벤처스(GV)와 TQ 벤처스, 발더톤캐피털, 직쏘우, 에피소드 1 벤처스 등으로부터 540억원 규모의 시리즈 A 투자를 유치했다. 로하이브는 지난 2021년 설립된 리걸테크 스타트업으로, AI 기반의 플랫폼 ‘로렌스’를 통해 변호사들이 법률 업무를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해당 플랫폼은 영국 변호사 시험(SQE) 1차 시험에 통과할 정도로 성능이 검증된 것으로 유명세를 탔다.
캐나다에선 조 단위 투자 라운드도 탄생했다. 캐나다의 리걸테크 스타트업 클리오는 지난 7월 1조 2000억원 규모의 시리즈 F 라운드 투자를 유치, 4조원 규모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 지난 2008년 설립된 클리오는 리걸테크 분야의 선도 기업으로, 클라우드 기반의 법률 업무 관리 플랫폼을 제공하고 있다. 중소형 로펌과 기업이 고객 관리와 법률 문서 작성, 일정 관리 등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같은 시기 미국 리걸테크 스타트업 하비는 1350억원 규모의 시리즈 C 투자를 유치하기도 했다. 하비는 영국 로하이브의 경쟁사로, 계약서 작성, 법률 문서 분석, 법적 자문 업무 등에 있어 변호사를 보조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리걸테크에 대한 글로벌 투자사들의 관심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혁신이 더뎠던 법률 산업에 기술이 도입되면서 높은 성장 잠재력을 보이는데다, 시장 규모 역시 확실하고, 유망 스타트업들이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면서 성공 사례를 낳고 있기 때문이다.
피치북 보고서는 “리걸테크는 기존 법률 서비스를 비용 및 효율성 측면에서 크게 혁신하는 산업”이라며 “현재 글로벌 법률 시장 규모는 1조 달러에 이른다. 유망 성공 사례가 쌓일수록 시장 규모는 더욱 커질 것”이라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