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042660)이 수 조원대 손실을 볼 것이란 예측이 제기됐던 7월 중순. 대우조선의 주채권은행이자 대주주인 산업은행은 시중은행을 대상으로 대출 회수를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산은이 책임지고 대우조선에 자금을 공급하겠다고 했음에도 시중은행들은 잘 믿지 못했다. 산은이 한 번 더 당부하고 나서야 대우조선에 대한 시중은행들의 칼날이 무뎌졌다.
금융권에 따르면 성동조선해양 등 올 상반기에만 5개 조선사가 구조조정에 돌입했고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조선3사는 올해 연간 총 5조6000억원의 적자를 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에 따라 은행으로선 조선사에 대한 관리가 시급해진 모습이다. 국민은행은 이달말 만기가 돌아오는 한진중공업의 200억원 신용대출을 놓고 조율중에 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대출을 일부 상환하거나 담보를 잡거나 금리를 올리거나 하는 등의 방식으로 만기를 연장하는 방안을 조율하고 있다”며 “다른 은행들도 만기가 돌아올 텐데 비슷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체 시중은행 및 국책은행 등이 갖고 있는 5대 조선사(현대중공업, 현대삼호중공업, 삼성중공업, 현대미포, 대우조선해양) 익스포져(위험노출액) 규모는 62조2982억원(7월 20일 현재)에 달한다.
시중은행들이 조선사에 고삐를 죄는 것에 비판의 목소리도 들린다. 대우조선의 채권단 관계자는 “조선업황이 호황일 때는 너도나도 돈을 빌리라고 하다가 안 좋아지니까 대출을 회수해간다는 것은 은행으로서의 자세가 아니다”고 밝혔다.
문제는 단순히 조선업에서만 끝나지 않을 것이란 위기감이다. 금융위기 이후 저금리 속에서 만기를 연장해가며 버텼던 수많은 기업들이 미국이 기준금리를 올리면 대출 상환에 한계를 맞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번 돈으로 이자도 못 내는 한계기업(이자보상비율 3년 연속 100미만 기업)은 외부감사 대상 비금융법인 2만5452개 중 지난해말 15.2%(3295개)를 차지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현재로선 직접 나서서 할 일은 없다는 입장이다. 금융감독원 고위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현재 끼어들기 어렵다”며 “은행과 기업이 서로 조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임형석 한국금융연구원 은행·보험연구실장은 “과거 조선업이 어려웠을 때 은행들이 자율적으로 판단을 못하고 제3자에 의해 일방적으로 부실 관리를 못했던 부분이 누적돼온 측면이 있다”며 “은행들이 자기 책임하에 자율적으로 리스크 관리를 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설명했다.
(용어설명)=RG(선수금환급보증, Refund Guarantee) 선주에게 선수금을 받아 배를 만들던 조선사가 파산할 경우 금융사가 대신 선수금을 물어주는 상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