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현식 기자] 세기말인 1999년 만들어진 독일·헝가리 합작 영화를 무대로 옮겨온 창작 뮤지컬 초연작이 성황리에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 5일부터 대학로 링크아트센터 페이코홀에서 관객과 만나고 있는 ‘글루미 선데이’다.
| 뮤지컬 ‘글루미 선데이’ 공연의 한 장면(사진=네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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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제작사 네오가 제작한 ‘글루미 선데이’는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39년 헝가리 부다페스트 14구역에 있는 레스토랑을 배경으로 한 여자와 세 남자의 운명적이고 비극적인 사랑을 그린다.
소설 ‘우울한 일요일의 노래’를 각색해 만든 원작 영화와 마찬가지로 ‘죽음을 부르는 노래’로 통하는 ‘글루미 선데이’를 극의 주요 소재로 다룬다는 점이 특징. 애달프면서도 격정적인 선율이 돋보이는 음악과 함께 짜임새 있는 이야기를 펼쳐낸다.
이제 막 초연을 올린 작품이 빠르게 관객과 평단의 마음을 모두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23일 공연예술통합전산망에 따르면 ‘글루미 선데이’는 500석 이하 중소극장 뮤지컬 작품 중 월간 예매율 순위 2위를 차지했다. 최근 ‘제9회 한국뮤지컬어워즈’ 창작 초연 작품 부문 대상 후보작으로 지명되며 작품성을 인정받기도 했다.
이 작품의 연출은 뮤지컬 ‘헤드윅’, ‘김종욱 찾기’, ‘주유소 습격 사건’, ‘더 라스트 맨’, 영화 ‘페이스 메이커’ 등으로 작품 세계를 펼쳐온 연출가인 김달중이 맡았다. 지난 20일 대학로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한 김 연출은 “스태프와 출연진들의 노력 덕분에 초연임에도 빠르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는 생각”이라며 “대상 후보에도 올랐으니 남은 공연을 더 열심히 연출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 뮤지컬 ‘글루미 선데이’ 공연의 한 장면(사진=네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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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루미 선데이’에는 현실적인 레스토랑 사장 자보와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인 그의 연인 일로나, 낭만적인 피아니스트 안드라스와 이기적인 독일 장교 한스까지 총 4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세 남자가 동시에 한 일로나를 사랑하게 되면서 로맨스가 소용돌이친다. 이 가운데 전쟁 여파와 안드라스가 작곡한 ‘글루미 선데이’가 불러일으킨 파장 탓에 사회가 혼란에 빠지면서 이야기가 파국으로 흘러간다.
김 연출은 “20년 전 개봉한 작품인 데다가 다루기 쉽지 않은 소재라 처음엔 연출 제안을 고사했다”고 고백했다. 이어 “10여 년 전부터 ‘글루미 선데이’의 뮤지컬화를 꿈꿔온 네오의 이헌재 대표의 연이은 러브콜에 마음이 흔들려 제안을 수락한 것”이라는 뒷이야기를 밝혔다.
그러면서 김 연출은 “연출을 맡기로 결심한 이후에는 다큐멘터리 성향이 강한 원작 영화를 공연 어법으로 풀어내는 데 주안점을 뒀고, 일로나를 중심으로 한 다자연애 이야기를 잘 다듬어 관객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음울하면서도 낭만적인 정서를 잘 살려낸 미장센과 상황과 동선에 따라 수시로 바뀌는 다채로운 조명 연출이 대표적인 호평 지점이다. 김 연출은 “자보의 레스토랑을 중심으로 놓고 부다페스트의 아름다운 풍경과 전쟁으로 무너져가는 도시의 모습을 혼재시켜 작품의 이야기와 걸맞은 무대를 구현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 뮤지컬 ‘글루미 선데이’의 김달중 연출(사진=김현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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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글루미 선데이’ 공연의 한 장면(사진=네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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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글루미 선데이’ 공연의 한 장면(사진=네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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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의 초점은 중후반부터 나치 친위대 장교 한스의 횡포로 유대인인 자보의 레스토랑이 위기에 빠지는 이야기로 재조정된다. 이를 두고 일부 관객은 12·3 비상계엄 선포 사태가 떠오른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세기말 영화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이 의도치 않게 시의성 있는 작품이 된 것이다.
김 연출은 “평소 SNS를 통해 관객의 질문에 답변을 해주며 소통을 활발하게 하는 편”이라며 “최근 들어 현 시국과 맞닿은 작품이라는 반응이 많아진 점이 인상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슬펐다”고 말했다.
자보, 일로나, 안드라스가 한스의 부당한 억압 속에 서로를 지키려 고군분투하는 장면은 관객의 눈물을 쏙 뺀다.
김 연출은 “지금의 우리 또한 자유와 낭만이 완벽하게 구현되기 어려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만큼 이야기에 공감력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등장인물들이 지키고자 하는 레스토랑은 ‘존엄’이자 ‘삶의 가치’를 의미하는 장소”라면서 “해석은 관객의 자유이지만 기본적으로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물음에 관한 작품”이라고 부연했다.
| 뮤지컬 ‘글루미 선데이’ 공연의 한 장면(사진=네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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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웅·김종구·정문성(자보 역), 이정화·허혜진·이지연(일로나 역), 정민·유승현·홍승안(안드라스 역), 이진혁·반정모·홍기범(한스 역) 등을 주연으로 발탁한 ‘글루미 선데이’는 내년 1월 26일까지 공연한다.
신년에 연출가 입봉 30주년을 맞는 김 연출은 “최근 들어 ‘이게 마지막 작품이어도 이상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래서 더욱 신중하게 작업에 임하게 된다”면서 “또 하나의 신작을 무대에 올렸다는 것 자체로 저에게 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끝으로 그는 “연출가라면 계속해서 신작으로 동시대 관객과 소통해야 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내년에도 또 다른 창작 뮤지컬 신작 준비와 개인적인 숙원 사업인 뮤지컬 영화 제작을 위한 노력을 이어갈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