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푼돈이니 신고 안 하겠지”…취업·이직 중고책 판매사기 기승

사이버 범죄 8년 새 두 배 증가
중고거래 계좌 동결조치까지 ‘하세월’
“계좌지급 정지 제도 적용 도입해야”
  • 등록 2024-09-26 오후 1:54:07

    수정 2024-09-26 오후 7:17:24

[이데일리 황병서 기자] 전직을 준비 중인 직장인 박모(27)씨는 최근 소방설계기사 자격증을 따려는 사람들로 모인 인터넷 카페에서 황당한 경험을 겪었다. 저렴한 가격에 필요한 문제집을 구하려다 오히려 사기를 당한 것이다. 상대가 요구한 문제집 비용 3만 5000원 중 1만원을 선입금 명목으로 입금했는데 돈을 받은 사람이 이내 잠적을 했다. 박씨는 “추석이 끝난 뒤 편의점 택배로 보내주기로 했는데 상대가 채팅방을 나가고 연락이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진=제보자)
한 푼이 아까운 이들을 상대로 한 중고 인터넷 거래가 속출하고 있다. 박씨와 같이 전직을 꿈꾸거나 이직·취업을 희망하는 이들의 소중한 책값을 훔치는 이들이 버젓이 인터넷 카페 등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소방설계 실기 문제집을 구하려던 수험생 A씨도 최근 10만원 사기를 당했다고 했다. A씨는 관련 모의고사 등 기출 문제집과 관련 동영상을 10만원에 팔겠다고 해서 이 같은 제안에 응했다. 하지만 입금을 한 뒤 관련 영상을 보기 위해 필요한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알려달라고 했으나 엉뚱한 대답만 해 사기임을 직감했다. A씨는 “분한 마음에 더치트 애플리케이션에 피해 사례를 올렸는데 경찰서에서 연락이 와서 상황을 문자로 설명해주기도 했다”면서 “절실한 사람들의 돈을 빼앗은 사람들을 처벌할 수 있는 강력한 제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실제 중고 사기를 포함한 사이버 범죄는 매년 급증하고 있다. 경찰청 통계자료에 따르면 국내 사이버 범죄는 2014년 11만여 건이 발생했으나 2022년에는 23만여 건으로 8년 만에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코로나19 확산 초반 비대면 활동 보편화로 2020년 23만 4000여 건으로 급증했다가 2021년 21만 8000여 건으로 줄었지만 2022년 다시 증가한 것이다.

문제는 수사당국에 신고해도 사기 거래에 쓰인 통장이 당장 정지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중고 인터넷 카페에서 문제집을 구매하려다 5만원 사기를 당한 경험이 있던 강모(33)씨는 “경찰서에 신고를 해도 ‘동일인이 다수 피해 신고 건으로 접수해 조사 중’이라는 문자 외에는 연락이 없어 답답하다”면서 “앞서 사기 당한 사람이 신고한 뒤 바로 계좌가 정지됐다면 그다음 사람들이 피해를 보지 않을 텐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에 경찰에 수사를 요청하는 것을 지레 포기하는 이들도 있다. 박씨도 “입금한 계좌번호가 있어서 경찰 수사를 의뢰할까도 생각했지만 주변에 수사 의뢰를 했다가 오히려 시간만 낭비한 경우를 많이 접했다”고 말했다.

이는 경찰이 중고거래 사기 피해 신고를 받아도 바로 해당 계좌를 동결하는 조치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즉시 지급 정지를 할 수 있는 계좌는 보이스피싱 등 전기통신금융사기에만 국한되기 때문이다. 경찰을 통해 지급 정지를 할 수는 있지만, 영장을 발부받아야 하고 사건 접수부터 영장을 받기까지 통상 10일 정도가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기꾼들이 대포통장에서 돈을 훔쳐갈 시간이 충분한 것이다.

경찰도 지난 21대 국회에서 이러한 사각지대를 막기 위한 사기방지기본법을 추진하기도 했다. 해당 법은 보이스피승뿐만 아니라 기타 사기 범죄에 사용된 은행 계좌도 즉시 동결할 수 있는 근거를 담았다. 하지만 끝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폐기됐다.

전문가들은 중고거래 사기 사건에도 계좌 지급 정지 제도를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중고 사기 범죄 피해를 당하는 게 확실하고 그런 상황에서 차후의 피해를 막기 위한 차원에서 제도와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면서 “계좌지급 정지는 거래 자체를 못하게 하는 것이니 신속하게 조치를 취하는게 맞지만 동결된 피해금 환수는 범죄 사실이 일정 수준 이상 밝혀졌을 때 하는 방법도 적절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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