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아베노믹스 처음과 끝

아베, 80년전 경제정책 선택..넉달새 효과 입증
재정악화 부작용 우려 여전..국제사회 비난 오점
  • 등록 2013-04-01 오후 5:35:47

    수정 2013-04-01 오후 6:01:38

[이데일리 김유성 기자]“아베노믹스의 밑그림은 1930년대에 있다.”

‘망언 제조기’로 유명한 아소 다로(麻生太郞) 일본 부총리 겸 재무장관은 지난달 3일 일본 국영 NHK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의 경기부양 정책이 1930년대 재무장관을 지냈던 다카하시 고레키요(高橋是淸)의 정책과 닮았다며 이같이 말했다.

고레키요 전 재무장관은 1930년대 당시 세계 공황을 극복하기 위한 처방으로 강력한 양적완화 정책을 시행했다. 화폐 가치를 금에 고정시킨 금본위제를 없애고 정부가 원하는 대로 돈을 무제한 찍어냈다. 엔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일본의 무역 경쟁력은 개선됐다. 덕분에 일본은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아베 총리는 장기불황에 빠진 일본 경제에 대한 처방으로 1930년대식 경기부양을 선택했다. 재정과 금융을 동시에 대규모로 완화하는 특단의 조치로 인위적인 인플레이션을 유발해 침체의 터널을 벗어난다는 것이 아베의 경제정책, 이른바 ‘아베노믹스’의 핵심이다.

이에 따라 일본은행(BOJ)은 내년 1월부터 매달 13조엔(약 150조원) 규모의 무기한 국채 매입을 실시하기로 했다. 여기에 앞으로 10년간 100조~200조엔의 대대적인 공공사업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지속적으로 추진했던 제로금리와 양적완화 정책에서 한 발 더 파격적으로 나아간 것이다.

◇벌써 나타난 약발..아베는 옳았나

시장에 돈을 풀어 인위적으로 인플레이션을 일으키는 아베노믹스의 출발은 순조롭다. ‘잃어버린 20년’으로 불리는 20여년에 이르는 장기 불황으로 위축 일로에 서있던 일본 경제가 회복 기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아베노믹스 효과를 뚜렷하게 드러내고 있는 곳은 환율과 증시다. 지난 2008년 이후 줄곧 강세를 유지했던 엔화는 아베 정부의 양적완화 방침에 따라 약세로 돌아섰다. 달러 대비 엔 환율은 자민당이 정권을 잡을 것으로 예상되기 시작한 지난해 11월 중순부터 급속히 상승(엔화 가치 하락)해 한 때 96엔선마저 넘어섰다. 넉달 새 약 20% 올랐다.

수출 기업의 경쟁력이 개선되면서 주식시장도 활기를 되찾았다. 일본 증시 닛케이225지수는 같은 기간 약 45% 뛰었다.

제조업 지표 역시 호조세를 보이고 있다. 일본은행(BOJ)이 제조업종을 대상으로 실시한 1분기 단칸(短觀·단기경제관측조사) 제조업 지수는 -8로 전분기 -12보다 4 포인트 개선됐다. 단칸 제조업 지수의 개선은 3분기만에 처음이다.

BOJ는 또 지난달 8일 월간경기평가 보고서에서 3월 경기 평가를 상향 조정했다. 이는 3개월 연속 경기 평가를 높인 것으로 지난 2009년 9월부터 11월까지 경기평가를 상향한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폴 크루그먼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교수는 올초 일본의 양적완화 정책에 대해 합리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일본이 지난 20여년간의 저성장 불황을 벗어나기 위해 아베총리의 대담한 재정지출과 대규모 완화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장기적으로는 경제 악화 우려 제기

다만 현재 일본의 재정상황과 공공사업의 제한적인 경기부양을 고려하면 장기적으로는 일본경제가 악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아베 총리가 언급한 200조엔(약 2310조원) 공공사업은 기존 공공사업 규모(2002~2011년 총 79조1000억엔)의 2.5배에 달한다. 그러나 전통적인 토목공사형 공공사업에 의한 경기 부양효과는 유효 수요 창출로 이어지기 어렵다. 또한 노령화가 진행중인 일본 사회에서 사회보장재원에 대한 요구는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국제 사회의 우려 또한 만만치 않다. 특히 독일, 중국, 한국 등 수출이 경제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나라들은 일본의 파격적인 경기부양책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밖에 없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은 지난 1월 다보스포럼에서 일본 정부의 엔화 약세 유도정책에 대해 깊은 우려감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최근에는 중국 국부펀드 중국투자공사(CIC)의 가오시칭(高西慶) 사장이 일본의 엔화 약세 정책에 대해 “이웃 나라를 쓰레기통 취급한다”며 강하게 비난했다. 스티븐 로치 모간스탠리 아시아 회장은 일본은행의 통화완화 정책이 경기를 근본적으로 회복시키지 못하는 대중적 처방에 불과하다고 진단했다.

아베노믹스가 근간으로 삼은 80년 전을 살펴보면 이러한 우려는 확연히 드러난다.

1930년대 미국과 영국은 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본의 뒤를 이어 자국 화폐 가치를 낮추는 조치를 단행했다. 수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일어났던 당시 환율전쟁은 세계 2차대전을 촉발시켰고 중국, 한국을 비롯해 아시아 국가들을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했다. 결국 일본이 패망의 길에 들어서면서 최대 가해자이자 최대 피해자가 되고 만 셈이다.

▶ 관련기사 ◀ ☞ [기획]날개 단 아베노믹스, 어디까지 날까 ☞ [기획]아베노믹스, 한국 반면교사로 삼아야 ☞ [기획]TPPA, 일본경제 회생 이끌 원동력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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