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국민행복기금에 바란다

  • 등록 2013-03-11 오후 7:21:14

    수정 2013-03-11 오후 7:21:14

[이데일리 이진우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공약하면서 그 방법으로 제시한 것이 국민행복기금인데 이 기금은 어디서 새로 뚝 떨어진 돈이 아니라 신용회복기금이라는 이미 존재하던 기금의 이름만 바꾼 것이다.

신용회복기금은 이명박 캠프의 아이디어였다. 대선 공약으로 내세워 새로 설치한 기금이지만 이명박 정부 내내 찬밥 신세였다. 8000억원 넘는 기금이 그대로 남아있다는 게 그 반증이다. 돈은 있으되 쓸 수 있는 손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었다는 의미다. 제대로 썼다면 그 기금은 지금쯤 바닥이 나 있어야 맞다.

박근혜 정부는 이 돈으로는 어림도 없고 그 기금을 22조원 정도로 더 부풀려야 서민들의 부채 문제 해결이 어느정도 가능하다고 분석한다. 8000억원이 넘는 돈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그대로 기금으로 남겨놓은 이명박 정부의 정책이 틀렸거나 그걸 다 쓰고도 모자라 수십조원이 더 필요하다는 박근혜 정부의 계산이 오버이거나 둘 중 하나다.

신용회복기금은 왜 작동하지 못했을까. 햇살론이나 미소금융 등 당시 금융수장들의 아이디어가 반영된 새로운 상품을 먼저 팔기 위해 신용회복기금이라는 서민금융지원기구를 뒷전으로 방치했던 탓이 크다.

박근혜 정부는 그걸 다시 먼지를 털고 이름을 ‘국민행복기금’으로 바꿔서 써보겠다는 것이다.

서민 금융에는 두가지 방향이 있다. 하나는 자금 지원, 또 하나는 연체자 구제다. 햇살론이나 미소금융 정책이 자금지원이라면 신용회복기금이나 국민행복기금은 이미 자금 지원을 받았지만 회복이 어려운 서민들을 구제하는 것이다. 햇살론이나 미소금융이 빈민 식당이라면 국민행복기금은 병원 중환자실 정도쯤 된다고 할까.

연체자 구제라는 카드를 꺼내든 박근혜 정부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을 게 아니라 국민회복기금의 전신인 신용회복기금이 왜 작동하지 못했는지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발명품’인 줄 알았던 국민행복기금이 사실은 신용회복기금의 ‘재활용품’이라는 비난을 피하려다보면 뭔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추가하려고 하고 그러다보면 신용회복기금의 오류를 반복할 우려가 크다.

신용회복기금이 놓친 부분, 예를 들면 부채를 탕감해주는 대상자의 재산이나 소득 상황을 조사할 권한을 갖고 있지 못했다든가, 금융회사들을 한 곳에 모아놓고 부채 탕감 대상자의 다중 부채를 한꺼번에 해결하는 협상 테이블을 만들지 못했다든가 하는 문제를 제대로 읽어야 한다.

국민행복기금이 뭘 할 것이냐보다는 신용회복기금이 왜 작동하지 못했는 지에 대한 분석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5년 후 다음 대통령 공약에 가계부채 해결을 위한 ‘서민복지기금’같은, 이름만 바꾼 새로운 기금 정책이 또 탄생할 지도 모른다. 역사는 괜히 돌고 도는 게 아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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