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서 폴댄스 거실서 일인극…용감한 공연기획자

"누가 뭐래도 내 길 가련다"로 소신 펼치는 2인
남주경 상상발전소 대표 "재밌는 작업으로 새경험"
50년 된 목욕탕서'행화탕의 뮤즈들' 공연
행위예술가·배우 심철종 "내 인생 함축한 1인극"
아파트 한평극장서 '죽느냐 사느냐' 상설공연
  • 등록 2016-08-29 오후 3:03:19

    수정 2016-09-01 오전 9:34:16

융복합 설치 퍼포먼스 ‘행화탕의 뮤즈들’의 한 장면(사진=우경선 사진작가).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1. 서울의 낮기온이 36.6도까지 치솟은 지난 21일. 서울 마포구 아현동에 오래된 목욕탕인 ‘행화탕’의 문이 활짝 열렸다. 상상발전소의 융복합 설치 퍼포먼스 ‘행화탕의 뮤즈들’을 보기 위해 이날 모인 관객은 단 25명. 이들은 두 개로 나뉜 공간을 이동하며 공연을 관람했다. 감미로운 바이올린연주를 들으며 발걸음을 옮기면 물이 흥건한 바닥 위에서 맨발로 폴댄스를 추는 아티스트와 마주했다. 다른 공간에선 3m 높이의 커다란 수조 안에서 수중댄스가 펼쳐졌다. 하늘하늘한 시폰 원피스를 입고 물속에서 춤을 추는 무용수의 모습은 그야말로 ‘뮤즈’를 떠올리게 한다.

2. 서울 종로구 내수동 한 아파트 1103호. 광화문에 위치한 이곳은 ‘세상에서 제일 작은 한평극장’이다. 거실에 마련한 작은 공간에서 모노드라마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가 펼쳐진다. 지난 26일 공연을 관람한 관객은 총 3명. 단 한 명의 배우가 ‘기억을 찾아서’ ‘인생과 사랑’ ‘죽음, 그 이후’ 등 총 3가지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상기하는가 하면 헤드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사랑’에 관한 연기를 감상한다. 안대를 끼고 있으면 “죽음이란, 그토록 사랑한 그대를 더 이상 그리워할 수 없는 것”이라고 읊조리는 배우의 독백만이 오롯이 들린다.

관객이 한 명밖에 없어도 장소가 열악해도 자신만의 철학으로 독특한 공연을 올리는 공연기획자들이 있다. 이달 13일부터 21일까지 ‘행화탕의 뮤즈들’을 올린 남주경(41) 상상발전소 대표와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를 상설공연하는 행위예술가이자 배우인 심철종(56)이 그 주인공. 이들은 관객과 가깝게 소통하고자 더운 여름에도 구슬땀을 흘리며 공연을 올리고 있다.

△“단 한명의 관객 앞에서도 공연”

심철종은 국내외 여러 실험예술제와 국제연극제에 참가하며 오랫동안 실험연극을 만들어왔다. 1998년 홍익대 앞에 전위예술의 산실로 불린 공연장 ‘씨어터 제로’를 열었던 주인공이기도 하다. 2004년 재건축을 원한 건축주의 요구로 문을 닫은 이후 ‘한평극장’을 기획해 지속적으로 관객을 만나오고 있다. 심철종은 “어렸을 때부터 파격적인 예술을 하다 보니 이제는 삶이 됐다”며 “예술이 특별한 건 아니지만 예술가로서 사회에 작은 변화를 주고 싶었다”고 1인극을 시도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배우 심철종이 연기한 모노드라마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의 한 장면(사진=심철종).


배우 심철종.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는 관객이 스스로 생각을 하게 만드는 연극이다. 안대를 끼거나 음악을 들으며 공연을 보게 하는 이유다. 장소가 좁고 공연시간이 일정치 않다 보니 관객이 적을 때도 많다. 어느 날은 한 명이 오기도 했고, 심지어 관객이 없는 날도 있었단다. 그런 날은 홀로 공연을 하고 그 모습을 찍어 SNS에 올리기도 했다. “한 명의 관객이 왔길래 ‘혼자인데 볼 수 있겠느냐’고 물어보니 보겠다고 하더라. 그 한 분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연기했다. 오히려 가까이서 교감하다 보니 배우도 관객도 힐링이 되더라. 하하. 희곡이 따로 없어서 수시로 조금씩 바뀌기도 하는데 작품에 내 인생이 함축돼 있다.”

스타배우가 되길 바라는 게 아니다. 그저 자신이 준비한 작품에서 관객이 많은 것을 느끼고 돌아간다면 그걸로 만족한다고 했다. “살아가는 과정 자체가 인생이다. 라면가게를 하더라도 ‘어떻게 하면 맛있게 끓일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장인정신이 필요하지 않은가. 예술도 마찬가지다. 목표를 가지고 계속 정진하며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죽는 순간까지 공연을 하다가 죽는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낡은 목욕탕이 무대로…“단 25명만 초대”

행화탕은 올해로 50년이 된 목욕탕이다. 재개발 예정으로 인해 복합문화예술커뮤니티공간으로 재탄생했고 지난 5월 15일 개관했다. 남주경 대표는 ‘예술로 목욕합니다’라는 행화탕의 영업취지에 공감해 이 공간에서 국내서 시도해 본 적이 없는 공연을 준비했다.

융복합 설치 퍼포먼스 ‘행화탕의 뮤즈들’의 한 장면(사진=우경선 사진작가).


남주경 상상발전소 대표.
2012년 여수엑스포 기네스 10에 이름을 올린 ‘무중력인간’과 2015년 영주시의 지원을 받아 탄생한 ‘수중인간’은 국내 유일의 퍼포먼스 공연 콘텐츠다. ‘행화탕의 뮤즈들’은 이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남 대표는 “2~3년 안에 행화탕이 철거되는데 그전까지 이곳에서 재밌는 작업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우리 콘텐츠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고 관객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기획의도를 밝혔다.

함께 참여한 이들은 전문 무용수들이다. 폴댄스를 선보인 김효영(31)은 “너무 더우면 땀 때문에 폴에서 미끄러질 수 있어서 위험하다”며 “고난이도 동작도 많지만 아름다운 공연이어서 즐거운 마음으로 임했다”고 공연에 애정을 표했다. 수중인간을 연기한 김동희(29)는 “밥을 먹은 후에 공연을 하면 물속에서 숨쉬기가 힘들다”며 “간단하게만 먹고 공연을 올렸는데 나중에는 적응이 돼서 괜찮더라”라고 말하며 웃었다.

앞으로도 행화탕에서는 새로운 공연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를 위해 내달 30일까지 스토리펀딩을 진행하고 있다. 남 대표는 “현재 펀딩으로 목표액의 50%를 달성했다. 체계화한 공연장에서 정기적으로 공연을 올리는 게 목표”라며 “관객들이 우리 공연에 신선함을 느끼고, 또한 계속해서 공연장을 찾아주길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융복합 설치 퍼포먼스 ‘행화탕의 뮤즈들’의 한 장면(사진=우경선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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