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역설적으로 국회법은 몸싸움과 날치기로 대표되는 이른바 ‘동물국회’를 막기 위해 등장한 제도였다. 식물국회 막자고 법을 바꾸자니 ‘그럼 다시 동물국회로 돌아가자는 것이냐’는 반론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동·식물’ 사이에 어색하게 끼어 있는 국회법은 무엇이고, ‘인간국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분석해본다.
민주당의 ‘선공’.. 반격 실패한 새누리
식물국회를 만든 주범으로 국회법이 거론된 것은 새정부 출범을 열흘 남짓 남겨둔 지난달 13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민주통합당 의원들이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안건조정위원회에 회부하면서부터다. 안건조정위는 지난해 5월 여야합의로 개정한 국회법 57조2항에 따라 의견충돌이 심한 쟁점법안을 다루기 위해 여야 동수(각 3명씩 총 6명)로 구성하는 기구다.
법안이 안건조정위에 회부되면 최장 90일간 논의 해야하고, 새누리당(3명) 단독으로 안건을 통과시킬 수도 없다. 국회의석 과반(150석)을 넘는 153석을 보유한 새누리당이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 지연에 발을 동동 구르면서도 단독처리할 수 없는 이유다.
수세에 몰린 새누리당도 국회법을 이용해 ‘반격’에 나섰다. 이한구 원내대표가 7일 박기춘 민주통합당 원내대표에게 정부조직법 관련법안을 국회의장에게 직권상정할 것을 요청하자고 제안한 것도 국회법 85조1항의 직권상정 조항을 활용한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날치기 처리 의도’라며 즉각 거부의사를 나타냈고, 민주당에 ‘선공’을 당한 새누리당은 묘수가 없게 됐다.
유일한 방안은 정부조직법을 ‘신속처리대상안건’으로 지정하는 것인데 이마저도 재적의원 5분의3(180명) 또는 소관위원회(행정안전위원회) 재적위원 5분의3이 서명해야하기 때문에 새누리당 단독으로는 어렵다.
새누리당이 국회법 재개정을 요구하고 있지만 이는 1년 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2011년 서울시장 선거 전후 ‘안철수 현상’으로 대표된 새정치에 대한 열망,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강행 처리와 국회 본회의장 최루탄 투척 사건 등은 국회법 개정 요구를 빗발치게 했다. 당시 선두에 섰던 건 새누리당이었다.
여기에는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과 정권심판론 분위기 속에 다가올 4·11총선에서의 패배로 다수당 지위를 내줄 것 같은 불안감도 깔려었다. 반면 총선 승리를 예상했던 민주당은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분위기였다.
이는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당시 원내대표)의 발언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황 대표는 2011년 11월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무제한으로 허용될 수 있는 직권상정 요건을 극히 엄격하게 제한하고, 단순 과반이 아닌 60% 정도의 가중된 다수결제도를 확보해야할 것”이라며, 야권에 국회법 개정논의를 촉구했다.
결국 새누리당은 자기가 만든 연장으로 ‘제 발등을 찍은 것’이고, 민주통합당은 남이 버린 연장을 들고 ‘무력시위’를 하는 셈이다.
“法 문제가 아니다.. 협상의정치 살려야”
지난해 개정된 국회법의 취지는 의안처리 기능을 마비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정치’를 정상적으로 작동시키자는 것이었다. 소수당이 국회 본회의장을 물리력으로 점거하거나, 다수당에 의해 추천된 국회의장이 직권상정 후 강행처리하는 극한의 대립을 막자는 것이 배경이다.
전문가들도 문제는 국회법 자체가 아니라 정상적인 정치가 작동되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내영 고려대 정외과 교수는 “몸싸움 국회를 막기 위해 도입한 것인데 법 때문에 못한다고 하는 것은 정치권이 스스로 합의할 능력이 없다는걸 증명하는 것”이라며 “법을 문제삼기보다는 여야가 협상의 정치를 어떻게 살릴 것인지를 고민하고 정치문화와 리더십 문제를 생각해야한다”고 지적했다.
박 대통령이 대선 후보시절 제왕적 대통령제를 비판한 만큼, 여당에게 자율성을 충분히 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최진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는 “국회 교착상태의 물꼬를 틀 수 있도록, 박 대통령이 모든 것을 진두지휘하기보다는 탄력적 리더십을 보여줘야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