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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이 10일 내놓은 지난 1분기 자금순환 통계를 보면 지난해 가계와 비영리단체가 운용한 자금에서 조달한 자금을 뺀 잉여규모, 다시 말해 순자금운용(여유자금)은 26조7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8조5000억원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1분기를 기준으로 볼 때 2016년 1분기(28조8000억원) 이후 가장 많은 수치다.
자금순환은 국가 경제 전체의 재무제표 성격의 통계다. 국내총생산(GDP)이 가계 기업 정부 등 각 경제주체의 생산과 소득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면, 자금순환은 각 주체간 금융거래(자금흐름)을 파악한 것이다. 자금순환 통계상 순자금운용은 부동산 예금 보험 주식 등 투자 목적으로 굴린 돈(운용자금)에서 금융기관으로부터 빌린 돈(조달자금)을 뺀 여윳돈을 말한다.
주목할 것은 1분기 가계가 여유자금 중 38조4000억원을 어디에도 투자하지 않고 현금·예금에 쌓아뒀다는 점이다. 이는 1분기를 기준으로 보면 사상 최대 수준이다. 가계는 채권 8조8000억원과 주식·펀드 2조8000억원을 처분하고 현금으로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투자시장이 부진해 채권·주식 자금을 처분하기는 했지만 정부가 가격 급등을 막기 위한 부동산 규제를 강화한 탓에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것이다.
한은 관계자는 “가계의 자금조달은 대부분 대출로 이뤄지는데, 부동산 시장이 주춤하면서 대출금이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정부의 여유자금은 대폭 줄었다. 1분기 정부의 여유자금은 6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8조4000억원 줄었다. 1분기를 기준으로 볼 때, 관련 통계가 편제된 이래 정부 여유자금이 최대폭 줄어든 것이다.
1분기 기업의 여유자금은 15조8000억원 감소했다. 2011년 1분기(-23조7000억원) 이후 최대폭 줄어든 것이다. 1분기 기업의 실적이 부진한 것이 원인으로 꼽힌다. 반도체 경기가 부진하고 미·중 무역분쟁에 따라 기업들의 수익성이 다소 둔화되면서 여유자금이 줄었다는 것이 한은의 분석이다. 특히 기업들이 자금을 조달해 투자가 아닌 운용에 쓴 것으로 파악됐다.
가계의 여유자금은 늘었지만 정부와 기업의 순자금운용이 줄어들면서 국내의 전체 순자금운용은 2012년 1분기(5조3000억원) 이후 가장 적은 13조원으로 집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