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필요없다” “수업 거부”…계란·케첩 범벅된 동덕여대

‘공학 전환’ 논란에 수업 거부 나선 학생들
본관 앞 근조화환 늘어서고 과잠 시위까지
학령 인구 감소에 ‘여대 존폐’ 논란 계속
“학교 정체성 훼손” vs “저출산 시대 재정 고려” 갑론을박
  • 등록 2024-11-12 오후 2:18:49

    수정 2024-11-12 오후 2:18:49

[이데일리 이로원 기자] 최근 동덕여대가 학교 발전 수립 과정에서 남녀공학 전환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재학생들이 근조화환을 보내는 등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학령 인구 감소와 사회 변화로 일각에선 “요즘 여대가 왜 필요하느냐”는 지적도 나오지만, 여성 문제에 대한 논의의 장으로서 여대는 여전히 필요하다“는 의견도 만만찮다.

동덕여대가 남녀공학 전환을 논의 중이라는 소식에 동덕여대 설립자 조동식 선생의 흉상은 달걀, 페인트 등을 뒤집어썼다. 사진= 보배드림 캡처
12일 동덕여대 총학생회에 따르면 지난 11일 오전부터 동덕여대 본관 앞에는 ”명예롭게 폐교하라“는 현수막과 함께 대학 점퍼(과잠)를 벗어두는 학생들의 시위가 벌어졌다.

학내 곳곳은 빨간 라카 스프레이로 쓴 공학 전환 반대 메시지와 테이프로 붙인 반대 문구가 가득했고, 동덕여대 설립자 조동식 선생의 흉상은 각종 쓰레기와 달걀, 페인트 등으로 뒤덮였다.

100주년기념관 건물 앞에는 ‘공학 전환 결사반대’라는 팻말이 붙은 근조화환이 늘어섰다. 공개된 피켓과 근조화환 사진에는 ”동덕여대 알몸남 사건을 기억하라“ ”여성의 배움터에 남성은 필요없다“ ”대학본부는 여자대학 설립 이념을 명심하라“ ”사기 입학 웬말이냐“ 등 문구가 적힌 피켓과 대자보가 걸렸다.

총학생회는 대자보를 통해 ”대학본부는 여자 대학의 존재 의의를 다시 한번 상기하라“며 ”(학교 측의) 무모한 공학 전환 철회를 요구하며 다시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거론되지 않길 바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2일 서울 성북구 동덕여자대학교 본관 앞에 설치된 학교 마스코트 솜솜이 조형물 옆으로 총학생회를 비롯한 학생들이 학교 측의 남녀공학 전환 논의를 규탄하며 적은 수업거부 등 항의 문구가 게시돼 있다. 사진=뉴스1
앞서 동덕여대가 지난달 말 진행한 대학 발전 계획 수립 회의 자리에서 학령인구 감소로 신입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을 경우 남녀공학 전환을 대안으로 삼을 수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동덕여대 측은 남녀공학 전환에 대해 학교 미래를 위해 검토되는 여러 방안 중 하나일 뿐 확정된 사안이 아니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동덕여대 관계자는 ”학교의 발전계획안인 ‘비전 2040’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아이디어 중 하나로 제시된 것“이라며 ”그 이후 발전된 게 하나도 없는 상태“라고 밝혔다.

학생들이 남녀공학 전환을 이처럼 거세게 반대하는 이유 중 하나로는 2018년 발생한 ‘동덕여대 알몸남 사건’이 꼽히고 있다.당시 한 남성이 동덕여대 건물에 침입해 나체 사진과 음란행위 사진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려 논란이 됐다.

이후 경찰 조사에서 그는 ”여대라는 특성에 성적 충동을 느꼈다“고 진술했으며,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이 사건으로 여대를 겨냥한 성범죄에 대한 학생들의 불안감이 커지면서 학교는 외부인 출입을 금지하는 조치를 내렸다.

다만 일각에서는 여성의 대학 진학율이 남성보다 높아진 요즘에도 여대가 필요하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일부 누리꾼들은 ”학교 정체성을 훼손하는 것인데 당연히 나서야 한다“ ”재학생들이 싫으면 (남녀공학 전환) 안 해야 한다“라는 의견을 내놓은 반면, ”저출산 시대에 재정적인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 ”시위를 해도 너무 과격하게 한다“ 등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 윤김지영 창원대 철학과 교수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여대는 여전히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유리천장 등 여성에 대한 불평등에 대해 논의하고 연구할 수 있는 담론이 형성되는 공간으로서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딥페이크 문제부터 N번방 등 신종 성폭력 범죄가 등장하고 있는데, 그러한 문제들에 대해 충분히 연구하는 데 있어서도 여대라는 공간은 중요하다”고 밝혔다.

교육부에 따르면 남녀공학 전환 여부는 대학 측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 현재 전국에서 남은 4년제 여자대학은 동덕여대, 이화여대 등 7곳이다. 한양여대를 비롯한 전문대를 더하면 모두 14곳이다.

앞서 상명여대는 1996년 남녀공학으로 전환해 상명대로 바뀌었다. 성심여대는 가톨릭대와 통합했고 대구의 효성여대는 대구가톨릭대와 통합돼 남녀공학이 됐다. 여대의 공학 전환 움직임은 학령 인구 감소와 사회 변화로 남학교나 여학교에서 남녀공학으로 전환되는 중·고교 사례가 이어지는 것과 맞물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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