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영화 속도낸다 산은 민영화는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금융기관을 육성하려면 각종 규제로 묶여있는 산은을 풀어줘 기업금융과 투자금융 등에서 핵심경쟁력을 키울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논리다. 대신 최대주주인 정책금융공사가 산은 민영화로 얻어지는 재원으로 중소기업 지원 등 정책자금 집행역할을 하도록 구조를 짰다. 정부는 민유성 현 회장을 임명해 민영화의 첫 단추를 채우게 했다. 관(官)의 물을 빼고 민간부문이 지닌 경쟁력과 노하우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민 회장은 산은의 인적분할을 통해 산은금융지주와 정책금융공사를 설립하는 등 민영화의 1단계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지분매각이 이뤄져야할 2단계 과정에선 별다른 진척을 보지 못했다. 금융위기 수습과정에서 정책금융의 중요성이 강조되다보니 민영화보다는 국책은행으로서 역할론이 더 중요하게 다뤄졌고 그 결과 민영화 우선 순위마저 우리금융지주에 밀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강 위원장이 내정된 것은 추진력이 떨어진 민영화 작업에 속도를 내라는 의미로 볼 수 있다. 금융부문의 전문성은 떨어지지만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낸데다 대통령 측근이라는 정치적 의미까지 더해져 말 그대로 힘과 네트워크 측면에서 강 내정자를 따라올만한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민영화와 구조개혁 등 굵직굵직한 숙제가 있어 믿고 통으로 맡길 사람이 필요해 삼고초려를 했다"며 강 위원장 내정이 쉽진 않았음을 시사했다.
강 내정자는 행시 8회 출신으로 김석동 위원장(행시 23회)의 까마득한 선배다. 강 내정자가 지난 1997년 차관으로 취임했을 때 김 위원장은 당시 외화자금과 과장이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과는 서울대 법과대 65학번 동기지만 강 내정자가 행시기수로는 10기인 윤 장관보다 2년 빠르다.
강 내정자는 대외적 발언을 자제하고 있다. 그는 이날 이데일리와 만나 내정소감을 묻는 질문에 "열심히 하겠다"고 짧게 답했다. 산은 민영화와 관련해선 "천천히 생각해보겠다. 아직은 얘기할 상황이 아니다"며 말을 아꼈다.
◇ 메가뱅크론, 수면위 부상할듯
대우증권과 우리투자증권 합병안이 새삼 주목받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현재 산은지주나 우리지주 모두 공식 부인하고 있지만 증권업계에선 우리증권 지분을 대우증권의 최대주주인 산은지주가 사들여 대우증권과 우리증권을 합병할 것이라는 관측이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다만 김석동 위원장이 우리금융(053000) 분리매각에 부정적 입장이라 어떤 식으로 그림이 나올지는 지켜볼 필요가 있다. 김 위원장은 "기본적으로 떼어 파는 걸 반대한다"며 "앞으로 큰 지도들이 그려질 것이다. 지금 머릿속 그림이 너무 크다"며 분리매각 이상의 계획을 갖고 있음을 시사했다. ☞관련기사 `금융위원장 "우리금융 계열사 분리매각 반대"(종합)` KB금융지주와 격돌하는 상황도 예상해볼 수 있다. 지난해 메가뱅크론의 불을 당긴 장본인은 다름아닌 어윤대 KB금융(105560)지주 회장이었다. 어 회장 스스로 "우선 경영합리화를 추진한 뒤 생각할 볼 문제"라며 한발 빼긴 했어도 산은이 메가뱅크에 드라이브를 걸면 KB금융 또한 대응전략 마련에 고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어 회장은 지난해 우리금융 M&A 가능성을 시사해 금융권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았다.
산은 내부의 조직구성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도 있다. 지금은 산은지주 회장이 은행장을 겸임하고 있다. 지주사 회장이 은행 실무까지 일일이 챙겨야하는 구조다. 은행장들이 모이는 행사가 있을 때도 산은 회장은 은행장 자격으로 참석해야해 다른 금융지주회사 회장들에 비해 낮은 대우를 받는다. 이를 테면 한국은행 총재가 매월 개최하는 금융협의회에서 강 위원장이 다른 은행장들과 나란히 자리를 잡게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다.
이를 피하기 위해 산은 내부에서 지주 회장과 은행장 자리를 분리하자는 얘기가 나오고 있지만 `위인설관(爲人設官)`이라는 비난이 제기되는 점이 부담이다. 김석동 위원장은 지난 9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산은지주 회장과 행장을 분리할 계획은 현재로선 없다"고 못박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