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댓글 심의규정 개정..삭제 활성화 논란

삭제 대상되는 불법·유해정보 구체화..법령 근거없는 자의적 판단 우려도
학부모 단체는 환영, 인터넷 진영은 반대
  • 등록 2013-12-17 오후 5:16:37

    수정 2013-12-17 오후 5:27:49

[이데일리 김현아 기자] 방송통신심의위원회(위원장 박만)는 17일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규정 개정안’ 공청회를 열고 인터넷 댓글 심의 규정을 더 명료하게 바꾸기로 했다.

방통심은 인터넷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불건전 정보 유통에 따른 폐해도 증가하는 만큼 불법정보와 유해정보를 구체화해 인터넷 표현물 삭제 시 예측가능성과 합리성을 높인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여전히 법적 근거가 부족한 ‘국가의 존립·안전을 현저히 위태롭게 할 우려가 있는 정보’나 ‘외국 모독’ 같은 것까지 포함돼 표현의 자유가 심각하게 왜곡될 수 있다는 비판도 만만찮다.

특히 이번 심의규정 개정은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이경재)의 ‘정보통신망법 개정’과 맞물려 논란이다.

방통위는 현재 사문화돼 있는 ‘임의의 임시조치(인터넷포털들이 명예훼손성 댓글로 판단하면 알아서 댓글을 삭제처리하거나 블라인드 처리하는 것)’를 활성화하기 위해 포털이 임의의 임시조치를 할 경우 법적배상책임을 줄이거나 면제받을 수 있는 조항을 추진 중이다.

이 조문이 국회를 통과하고 댓글 심의규정의 불법·유해 정보 기준이 늘어난다면, 인터넷 댓글 삭제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방통심의 심의기준이 네이버(035420)다음(035720) 같은 포털이 임시조치하는데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삭제 대상되는 불법·유해정보 구체화…법령 근거 없는 자의적 판단 우려도

개정된 심의 기준에서는 △명예훼손성 댓글은 당사자나 대리인이 심의를 신청토록 했고 △제재가 이뤄지기 전 당사자에게 7일 전 의견진술 통지를 하게 했으며 △특히 심의 대상이 되는 불법정보와 유해정보의 내용을 구체화하면서 조문을 늘렸다. ‘공포심이나 불안감을 유발하는 정보’나 ‘법령에 따라 분류된 비밀 같은 국가기밀을 누설하는 정보’ 등이 포함됐다.

신용원 변호사(법무법인 태산)는 “(인터넷)사전 심의에 대해 엄밀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의견진술 기회를 줄 때 7일 전에 통보하는 게 과연 기본권 보장이 되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양홍석 변호사(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운영위원)는 “심의 규정에 있는 ‘외국 모독’은 모독의 목적이 공공적인 경우만 처벌하는 형법보다 넓고, ‘국가 존립 위협’이나 ‘국가기관 전복 마비’ 역시 공소시효가 있는 헌정질서파괴에 대한 법률이나 형법상 내란죄보다 자의로 운용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심의 규정은 개별 법령에서 금지하는 정보를 열거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명호 방통심 통신심의팀장은 “의견진술 통보 기간이 길면 방어권이 강화될 것이나, 인터넷은 시급히 적절한 조치를 안 하면 개인이나 사회에 회복할 수 없는 피해가 올 수 있다”며, 7일이 적정하다고 밝혔다.

모호한 유해정보 외에 불법정보만 심의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2012년 헌법재판소는 방통심이 불건전 정보도 통신윤리 함양을 위해 심의하고, 제재할 수 있게 했다”고 반박했다.

학부모 단체는 환영, 인터넷 진영은 반대

이경화 학부모정보감시단 대표는 “유해정보의 심각성을 고려했을 때 상당히 잘 돼 있다”면서 “표현의 책임도 져야 하며, 아무리 상세히 규정해도 빠져나갈 구멍이 많으니 다른 면에서 제도를 잘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는 “월드와이드웹의 창시자인 팀 버너스리경이 만든 웹 인덱스를 보면 한국은 97점 인데, 인프라는 90점이 넘지만 표현의 자유는 60점에 불과했다”면서 “(행정기구인)방통심의 통신심의를 폐기하고 자율심의로 전환돼야 한다”고 말했다.

인터넷 업계 관계자는 “행정기구가 인터넷 심의를 하는 나라는 없다”면서 “임의의 임시조치로 정치권이나 권력기관이 포털에 댓글 삭제를 요청했다는 흔적이 남지 않게 되고, 심의 조문도 늘어나면 삭제되는 댓글이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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