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준기 기자] 지난달 27일 국회 시정연설 이후 ‘침묵’을 지켰던 박근혜 대통령이 다시 국정 역사교과서의 당위성·정당성을 강조하며 여론전에 뛰어들었다. 개혁 작업 등 국정과제가 산적한 상황에서 이른바 ‘국정화 정국’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자 정면 대결을 통한 ‘조기 진압’에 나선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박 대통령은 5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통일준비위원회 제6차회의에서 “통일을 앞두고 있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에 대한 강한 자긍심과 역사에 대한 뚜렷한 가치관”이라며 현행 교과서 발행체계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부각하고 나섰다.
그러면서 “이것이 선행되지 않으면 통일이 되기도 어렵고 통일이 되어도 우리의 정신은 큰 혼란을 겪게 되고 중심을 잡지 못하는, 그래서 결국 사상적으로 지배를 받게 되는 그런 기막힌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렇게 박 대통령이 9일 만에 여론전에 다시 뛰어든 건 교과서 국정화 작업을 흔들림없이 추진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함과 동시에 확정고시 이후 일고 있는 논란에 쐐기를 박겠다는 뜻을 드러낸 것으로 읽힌다. 기대와 달리 여론이 국정화 ‘찬성’이 아닌 ‘반대’로 흐르는 점과 여권 내부에서도 ‘회의론’이 일고 있는 점도 일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향후 험난한 국정과제들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국정화 논란이 장기화로 치달을 경우 자칫 불필요한 국력 소모는 물론, 내년 4월 총선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점도 고려한 것으로 관측된다.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역사 왜곡에 적극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는 정부의 취지와도 무관치 않다. 즉, 이에 대응하기 위해 ‘민족주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논리를 짜 야당의 ‘친일·독재 미화’ 프레임을 무력화하려는 의도가 담겼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그동안 국정화 정국에서 한 발 떨어진 스탠스를 취해왔다. 정연국 대변인은 전날(4일)에 이어 이날도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정부의 국정화 전환 확정에 따른 정국 경색과 관련한 청와대의 입장을 묻는 질문에 “이제는 올바른 교과서를 만드는 일에 국민의 지혜와 힘을 모으고 지금은 가뭄극복 대책과 민생, 한·중 자유무역협정(FTA)과 같이 경제활성화를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 할 때”라고만 밝혀왔다.
앞서 박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여야 지도부와의 회동에서 “집필진의 80%가 편향된 역사관을 가진 특정인맥으로 연결돼 7종의 검정교과서를 돌려막기로 쓰고 있어 결국은 하나의 좌편향 교과서”라며 국정화의 불가피성을 처음으로 언급했다. 이어 같은 달 27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우리가 대한민국 정체성과 역사를 바로 알지 못하면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을 수도 있고, 민족정신이 잠식당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