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서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해명을 기대하고 양해각서(MOU) 체결을 서두르려했던 채권단도 난감해하는 입장이다.
지난 23일 현대그룹은 그동안 논란이 돼왔던 1조2000억원의 프랑스 나티시스(Natixis) 은행 예금에 대해 담보를 제공하지 않은 순수한 차입금이라는 소명 자료를 채권단에 제출했다. 현대엘리베이터의 현대상선 지분 20.6%나 피인수 대상인 현대건설 자산을 담보로 대출받았다는 세간의 의혹을 부인한 것이다.
하지만 채권단의 `심기`는 여전히 불편한 눈치다. 시장에서 납득할 수 있는 해명을 기대했는데,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채권단 고위 관계자는 "실무진이 매각 절차 전반에 대해 법률적 사항을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며 "결정되기 전 미리 결과를 예단하지 말자"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의심이 간다고 검찰 처럼 수사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지 않느냐"고 토로했다.
기업금융에서 오랜 경험을 갖고 있는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운영자금 대출은 불가능하겠지만 투자자금 대출의 경우 용도가 분명하고 투자가치가 확실하다면 신용 대출도 검토할 수 있다고 본다"며 "하지만 1조2000억원의 규모는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다른 고위 관계자는 "계약서상 대출금 회수를 보장받을 수 있는 여러가지 신용보강 장치들이 있을 것"이라고 유추했다. 금융당국은 "채권단이 자체적으로 결정할 일"이라고 전제하면서도 "1조2000억원의 신용 대출이 말이 되냐"고 반문한다.
외환은행과 매각주간사가 당초 방침과 달리 현대그룹측 해명을 들어보겠다고 나선 배경엔 `멍석을 깔아줄테니 근거없는 의혹을 해소하고 M&A 후속절차를 빨리 진행하자`는 속내가 있었다.
실제 채권단은 여러가지 의혹 제기에도 불구하고 현대그룹이 위법 행위까지 동원해 현대건설을 인수하려 했을 것이라고는 보지 않았다. 국내 법원은 피인수대상(현대건설) 기업 자산을 담보로 인수자금을 마련하는 차입매수(LBO)를 불법으로 간주하고 있고, 현대상선 등 계열사 자산을 담보로 대출받았을 경우 공시 위반 사유가 된다.
금융권은 "현대건설 M&A는 어차피 정책성 딜"이라고 말한다. 현대건설이 채권단에 넘어가는 과정에 정부가 개입했고, 대부분의 매각사안을 위임받은 주주협의회 운영위 3개 기관 중 2곳이 정부 소유 회사다. 현재 제기되고 있는 의혹이 말끔하게 정리되지 않은다면 현대건설 M&A 일정은 계속 지연될 수 밖에 없다.
현 시점에서 의혹을 풀 수 있는 주체는 현대그룹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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