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면제'가 가른 위안부 손배소…2차 재판부 "재판권 없어"(종합)

21일, 이용수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2차 손배소 '각하'
法 "국제법 관습 거부는 헌법 취지에 어긋나"
1차 손배소 재판부 "국제 강행규범 위반한 범죄…국가면제 인정 안 돼"
ICJ 꼭 가겠다는 이용수 할머니…양국 정부는 '미온적'
  • 등록 2021-04-21 오후 12:46:36

    수정 2021-04-21 오후 10:05:30

[이데일리 이성웅 기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두 번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각하됐다.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린 1차 소송 때와 달리 법원은 할머니들의 피해 사실과 위안부 동원의 위법성은 인정하면서도 국제 관습법인 국가면제에 따라 일본에 대한 재판권이 없다고 판단했다.

이용수 할머니가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들이 일본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선고기일을 마친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사진=이영훈 기자)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5부(민성철 부장판사)는 21일 이용수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 20명이 일본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각하 판결을 내렸다. 각하 판결은 소송 요건을 갖추지 못해 본안 심리에 들어가지 않는 결정이다.

엇갈린 1·2차 판결…관건은 ‘국가 면제’

각하 판결의 근거는 ‘국가면제’였다. 국가면제란 국제법 상 한 주권국가에 대해 다른 나라의 재판권이 면제될 권리를 말한다.

재판부는 “국제관습법에 따른 국가면제 인정은 국제법규에 대해 동일 효력을 부여한 헌법 6조가 정한 국제법 존중주의 구현을 위한 것”이라며 “국내법 질서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국제법 관습을 거부하는 건 헌법이 정한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법원이 추상적인 기준을 제시하면서 예외를 창설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어 재판부는 “위안부 피해자들은 어린 시절 일본으로부터 많은 고통을 겪고 위안부 피해자분들의 고통과 피해에 대한 회복으로 미흡한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피해 회복 등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은 대한민국이 여러 차례 밝힌 것처럼 외교적 교섭 포함 대내외적 노력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각하를 선고했다.

국가면제에 대해 보수적으로 해석한 2차 손배소 재판부와 달리 1차 손배소 재판부는 국가면제의 예외를 인정하며 위안부 할머니들의 손을 들어 줬다. 지난 1월 8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김정곤 부장판사)는 고(故) 배춘희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리고 일본 정부에 피해자 당 1억 원씩 배상하라고 명령했다.

당시 재판부는 “이 사건 행위는 일본제국에 의해 계획적·조직적으로 광범위하게 자행된 반인도적 범죄행위로서 국제 강행규범을 위반한 것”이라며 “당시 일본제국에 의해 불법점령 중이었던 한반도 내 우리 국민인 원고들에게 자행된 것으로, 비록 이 사건 행위가 국가의 주권적 행위라고 할지라도 국가면제를 적용할 수 없다”며 국가면제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반인도적 범죄에 대해선 일본 정부의 주권면제보다 우리 헌법 상 ‘재판받을 권리’가 상위 가치라고도 했다. 비엔나 협약 53조에서 하위규범은 절대규범(국제 강행규범)을 이탈하면 안 된다고 규정한 대목 역시 재판권 인정 근거가 됐다. 재판부는 이 사건이 국제 강행규범 상 인도에 반한 죄에 해당하기 때문에 하위규범인 주권면제보다 상위에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권면제는 국제 강행규범을 위반해 타국의 개인에게 큰 손해를 입힌 국가가 주권면제 이론 뒤에 숨어서 배상과 보상을 회피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기 위해 형성된 것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일본 정부는 앞선 판결에 대해 무대응 원칙을 고수하며 항소하지 않았고,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1차 소송 승소에도 강제집행은 무산…ICJ 회부도 ‘불투명’

다만, 1차 손배소 재판부 역시 판결과 별개로 패소한 일본 정부로부터 소송 비용을 강제집행할 수 없다는 결정을 내렸다. 2월 정기 법관인사로 재판부 구성원이 바뀐 뒤 나온 결정이다. 새로 구성된 민사합의34부(김양호 부장판사)는 한일 양국이 그동안 한일청구권협정, 위안부 합의 등 각종 조약과 합의를 체결해 왔기 때문에 추심결정을 인용하는 것은 비엔나 협약 27조 등 국제법을 위반할 수 있다는 이유로 강제집행이 불가능하다고 봤다. 비엔나 협약 27조는 ‘어느 나라도 조약의 불이행에 대한 정당화의 방법으로 국내법 규정을 적용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날 판결을 보기 위해 법원에 나온 이용수 할머니는 선고가 채 끝나기도 전에 법정을 나왔다. 이용수 할머니는 “너무 황당하다. 결과가 좋게 나오고 나쁘게 나오고 간에 국제사법재판소(ICJ)는 꼭 가겠다”며 “다 피해자 똑같이 하기 위해 제가 하는 거지 저만 위해서 하는 거 아니다”고 호소했다.

이용수 할머니가 대표로 있는 위안부 문제 ICJ 회부 추진위원회는 “위안부 피해자들을 두 번 죽이는 판결이다”며 “한일 양국 정부에, 일본도 권위를 인정하는 유엔의 주요 사법기관인 ICJ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사법적 판단을 받을 것을 거듭 제안한다”고 밝혔다.

ICJ 회부는 개인이 아닌 국가가 당사자로 나서야 하며 당사국 간 협의가 있어야 한다. 회부추진위 측은 양국에 지속적으로 ICJ 제소를 요청했지만 우리 정부는 아직까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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