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추정 은둔 청년 30만 시대. 국내 최초 은둔형외톨이 지원기관이던 ‘K2인터내셔널코리아’가 코로나 펜데믹으로 폐업하고 K2 직원, 청년 은둔 당사자 등의 4인이 ‘안 무서운 회사’를 창업했다. 은둔을 경험한 활동가, 은둔 당사자인 청년들이 청년 은둔 문제 공론화를 위해 언론사 인터뷰, 청년 은둔 연구 사업 등의 사회 활동에 참여한다. 안 무서운 회사 활동가와 은둔 청년들이 함께 거주하는 셰어하우스 ‘터무늬 있는 집’에 방문해 세상에 나온 은둔 청년 당사자를 만났다.
청년들이 은둔으로 빠진 배경에는 극심한 가정 폭력과 학교 폭력이 자리하고 있었다. (은둔 청년은 닉네임으로 표기. 이하 모모, 자몽, 지인)
모모 “5살, 6살 때부터 부모님에게 맞았다. 늘 내가 왜 맞는지 ‘나 왜 맞는 거야 내가 뭘 잘못했어요’ 라고 물었다. 부모님이 그때마다 ‘그거를 모르니까 맞는 거야’라고 했다. 내가 맞는 이유를 엄청 찾았다. 초등학교 저학년이 됐을 때 그 이유가 나한테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부터 부모님과 부딪혔다. ‘내가 왜 맞는지 알려줘야 맞겠다’고 하면서 부모님이 때리려고 할 때 매를 뺏기도 했다. 저희 언니는 때리면 그냥 맞았는데 저는 안 그러니 부모님은 제가 제대로 맞아주지 않는 것에 더 화를 내면서 때렸다”
자몽 “고등학교 때까지 학교 폭력이 있었다. 가해자들이 저를 둘러싸고 뺨을 때리면서 웃어보라고 했다. 내가 다닌 학교는 전교 1등부터 30등까지는 한 반 이어서 2년 내내 가해자들과 같은 반이었다. 대학에 가서도 저를 쫓아와서 과제를 시키거나. 돈을 빼앗았다”
지인 “나의 부모님은 자녀가 자기 기준에 미지치 못하면 경멸했다. 중학생 때 내가 동성애자라는 걸 부모님이 아시면서 폐쇄병동에 강제 입원되기도 했다. 처음에는 부모님이 나에게 전환 치료를 시켰다. 병원에서 어머니한테 ‘동성애는 병이 아니다’라고 하니 그 후에는 병원에도 못가게 했다. 이후 학원 수업 시간 도중에 끌려가 폐쇄병동에 강제 입원하게 됐다”
모모 “부모님은 나의 모든 걸 통제했다. 친구, 가족, 진로, 종교까지. 특히 진로 부분에서 억압이 심했다.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고등학교, 대학교도 그림 관련으로 진학하고 싶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인물의 전신을 완성했다. 그게 너무 자랑스러워 가족에게 보여줬더니 어머니가 그림을 찢으시면서 이런 실력으로 무슨 그림을 그리겠냐고 때려치우라고 하셨다. 부모님은 내가 전문직을 하길 원했다. 내가 그림을 그리는 게 너무 싫으셨는지 그림을 그릴 때마다 갖다 버렸다. 내가 학교에 가면 그림 관련 용품이나 책도 전부 박스에 쌓아서 버리셨다. 나는 늘 내 그림을 재활용, 쓰레기장에서 찾았다. 집에서 그림을 못 그리니 학교에 가서 계속 그림을 그렸다. 어머니가 학교에도 전화해 그림 그리는 것을 막아달라고 했다. 이후 폐쇄병동에 여러 번 강제 입원 되면서 부모님과도 완전히 돌아섰다. 고등학교 입학을 한 후에도 중학교 때 있었던 일 때문에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우울증이 심했다. ‘혼자서 벗어날 방법이 없다.’ 여기서 무력감이 되게 컸다. ‘내가 뭘 해도 할 수 없구나’ 이런 감정 때문에 점점 좌절하다가 정말 아무것도 못 하게 됐다”
자몽 “내가 학교 폭력을 당했을 때 저희 부모님은 ‘네가 맞을만 하니 맞는 거 아니냐, 동네 다니기 창피해 죽겠다, 남들은 학교 잘만 다니는데 왜 너만 그러냐’고 했다. 몇 년 동안의 가정 폭력도 있었다. 어느 날은 아버지한테 심하게 맞다가 ‘이 정도로 맞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강하게 반항한 적도 있다. 이후 폐쇄병동에 여러 번 강제 입원 됐다. 그리고 12년 동안 은둔하게 됐다. 은둔할 땐 3~4칸 정도의 계단을 봐도 식은땀이 흘렀다. 밖에 나가고 사람을 마주하는 것이 너무 무서웠다. 병원에 가야 해서 5시간 버스를 타고 서울에 갔다가 다시 버스를 타고 집에 온 적도 있다. 이건 게으르거나 의지의 문제가 아니었다. 12년 동안 적어도 2,3년에 한 번씩은 계속 시도 했다. 탈출해 보려고. 히키코모리나 은둔자라고 하면 보통 사람들은 노력을 안 한다, 게으르다 이런 생각을 하는데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어떻게든 나가려고 노력을 많이 한다”
은둔은 외부요인에서 온다
은둔 청년을 두고 의지의 문제나 타고난 내성적인 성향이 원인이라는 편견이 있다. 전문가들은 청년이 은둔으로 빠지게 되는 것은 개인적인 특성 때문이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누구나 은둔 청년과 같은 경험을 겪는다면 사건 이후 그들의 행동 양상을 그대로 반복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은둔 청년의 사회 복귀를 지원하는 파이나다운청년들의 김혜원 이사장은 “학교에서의 폭력적인 경험과 가정에서 부모의 부적절한 양육 태도 문제를 특정 시기에 몰아쳐서 경험하는 사람이 있다. 이 청년들이 사방을 둘러보고 ‘이거 말해봤자다’라고 인식했을 때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 무력감은 은둔으로 이어질 확률이 아주 높다”고 설명했다.
임명석 단국대학교 심리치료학과 교수도 “은둔 청년들에게 발견되는 징후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와 같다. 외상후스트레스장애라고 하는 것은 소인이 있다. 어렸을 때부터 장기간 폭력에 노출된 경우 학습된 무기력이 생길 수밖에 없다.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못할 거라고 생각을 하게 되니까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게 된다. 폭력에 노출된 초기에 사회적 개입이 됐더라면 학습된 무기력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무기력과 은둔 등의 문제는 취약성 같은 개인적인 특성보다 사회 시스템의 문제가 훨씬 더 크다”라고 지적 했다.
“저항하지 않고 참으며 노력했던 청년들,
그러니까 사실은…‘참고 노력하지 않아야 된다’가 더 맞는 말일 수도 있다”
자몽 “나는 항상 사건이 생기면 원인을 나한테서 찾았다. 어떤 상황에서도 나한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서, 학교 폭력을 당할 때도 내가 뭘 잘못했는지를 계속 생각했다. 이런 생각이 습관화가 돼 있다”
지인 “나의 부모님은 본인이 생각하는 정형화된 기준을 나에게 강하게 강요했다. 나는 그 기준에 맞추기 위해 노력도 과하게 하게 되고 무리하고, 그렇게 해도 부모님의 기준에 맞추지 못하게 됐을 때 ‘나는 실패했구나’라고 생각했다. 작은 실패가 내 인생 전체의 실패처럼 느껴지고 제 존재를 계속 부정했다. ‘나는 잘못 살았다. 나는 실패했다. 잘못 태어났다’ 이런 생각을 굉장히 많이 했다”
모모 “은둔 청년 셰어하우스에서 만난 친구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사회적인 문제로 여러 번 좌절하고 이것이 극심한 무기력 그리고 은둔으로 이어졌다. 가족 문제도 결국 가족의 생각 바탕에 ‘정형화’라는 사회적 바탕이 있었다”
전문가는 은둔 청년에게 완벽주의 성향과 강박을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계획을 이행하지 못했을 때 심한 좌절감을 겪고 이는 인생이 망가졌다 등의 흑백논리로 빠진다는 것이다.
김혜원 파이나다운청년들 이사장은 “은둔 청년들의 상당한 공통점은 문제를 겪었을 때 타인에 대해 분노하거나 비난하기보다 자기 비난 하는 걸 먼저 한다. ‘내가 뭘 잘못했지. 내가 고쳐야 할 게 뭔지’를 먼저 생각한다. 사실 이러한 특성이 사회에서 지적받을 일은 아니다.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 최대한 노력하고 계획한 걸 지키려고 노력하는 행동은 굉장히 좋은 특성이고 칭찬받아야 할 일이다. 그러나 이런 특성이 가해적인 사람들 앞에서는 너무 취약해진다. ‘착하네. 내가 공격해도 아무 말 안 하겠구나’ 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대면할 땐 너의 성향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소아청소년기 때부터 알려줘야 한다. 이것은 부모에게도 적용된다”
김희진 중앙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진료실에서 만나는 ‘학교에 못 가겠다’는 청소년들, 코로나 이후 집에서만 지내는 청년들을 심리 검사 후 자세하게 면담하면 가정 폭력이나 학교 폭력 경험이 있는 경우가 많다. 은둔형외톨이라는 단어는 내향적이거나 내성적인 기질 문제로 비치는 경우가 있는데 대부분은 자신을 방안에 가둘 수밖에 없는 경험을 가졌다”
실패와 다름을 있는 그대로, ‘터무늬있는집’
지인 “은둔을 하게 되면 정보가 취약해져 나와 같은 사람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못 했다. 여기에선 ‘우리 다 같은 사람이구나’ 라는 안심이 있다. 정형화된 틀에 맞추기 위해 억지로 노력하지 않아도 되고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지만 시도해도 괜찮다는 분위기다”
모모 “환경의 영향이 크다고 느꼈다. 성격이 많이 바뀌었다. 만약 다시 경쟁적인 사회에 나가게 되면 또 예전과 비슷한 상황이 올 수도 있겠지만 지금 이 환경에서는 실패에 연연하지 않아도 되니까 생각이 유연해지고 차분해졌다. 사실 못하는 거를 보여준다는 게 쉽지 않지 않나. 그래서 오히려 그냥 안 하게 됐다. 그런데 여기선 ‘실패해도 괜찮고 안 해도 괜찮다’라는 분위기여서 오히려 의욕을 얻는다. 내가 해보고 싶은 게 있으면 해봐도 되고 안 하고 싶으면 안 해도 괜찮다”
자몽 “셰어하우스에 오고 나서 주변 사람들 같이 있으니까 눈치 보여서 어떻게든 뭐라도 하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이게 노력이냐고 하겠지만 저는 무기력이 너무 심했다. 지금은 요리도 해서 먹고 계단도 무섭지 않고, 밖에 나갈 수 있다. 물론 정말 큰 노력이 필요하지만, 많이 바뀌었다”
은둔 청년들은 셰어하우스에 들어온 후 변화가 크다고 말한다.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환경 때문이다.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억지로 맞추려 하는 사회에선 은둔 청년이 더 많이 나올 수밖에 없다. 정형화된 틀에 맞춰 들어갔던 사람도 ‘더 이상 못하겠다’라고 한계에 달하는 순간 은둔에 빠질 수 있는 것이다.
김혜원 이사장은 “우리가 가장 먼저 실천해야 하는 건 다양성의 인정이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 들여줘야 한다.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은 그거 그대로 인정, 표현 좀 못하는 사람은 ‘그럴 수 있지 그것도 좋은 거야’, 내향적인 사람에게 ‘그것도 장점이 있고 그거대로 살 수 있어’라고 있는 모습 그대로 인정해 주는 사회가 돼야 한다”
김희진 중앙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요즘은 빅 트라우마뿐만 아니라 스몰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에게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스몰 트라우마라고 해서 자신감이나 자존감을 잃게 만드는 일상생활에서의 자잘한 사건을 겪은 사람도, 스몰 트라우마가 자주 반복되면 우울이나 불안 그다음에 사회적인 위축 그리고 은둔 같은 현상으로 이어지게 된다는 연구들이 많다”고 조언했다.
“그 전까지 어마어마하게 눌려 있던 것들이 폭팔적으로 나타나면 사람들은 그 결과만 본다. 과정은 보지 않고”
전문가들은 청년 은둔이 결코 비난받지 않아야 할 사람이 비난받으면서 시작된 것이라 말한다. 죽을 것 같은 고통을 견디고 세상에 다시 나온 청년들에게 ‘의지’를 논하고, 정형화된 잣대를 들이대지 말라.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실패를 무능력으로 여기는 사회, 가해자를 처벌하지 않고 피해자의 의지를 의심하는 인식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당신도 은둔으로 빠질 수 있다. 청년들은 은둔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