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입 꿈틀꿈틀, '불황형 흑자' 구조 완화하나

8월 상품수입 증가율 23개월 만에 플러스 전환
추세 확신은 어렵지만…'불황형 흑자' 반등 조짐
다만 9월 수출 다시 고꾸라져 우려감 재차 커져
'경상흑자 행진=한국경제 회복' 등식 성립 안해
  • 등록 2016-10-04 오전 11:46:36

    수정 2016-10-04 오전 11:59:26

올해 이후 한국은행이 산출하는 국제수지상 상품수출과 상품수입의 증가율 추이. 수출과 수입 모두 대부분 기간 두자릿수 마이너스(-) 증가율을 기록하다가, 8월 들어 반등 기미를 보이고 있다. 출처=한국은행


[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한 나라의 경상수지는 가계로 치면 살림살이와 같다. 버는 돈보다 쓰는 돈이 적어서 꾸준히 저축을 하느냐, 아니면 그 반대여서 항상 돈이 부족하느냐다.

소득이 줄어도 조금씩 저축할 수 있다면 힘든 일이 닥쳐도 대비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반면 지출이 더 많다면 빚으로 막을 수 있겠지만, 건강한 상태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는 기업 역시 마찬가지다.

경상수지는 상품과 서비스 등을 사고 팔면서 벌어들인 외화(수출)와 지급한 외화(수입)의 차이다. 나라 경제의 대외거래 상태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꾸준히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올해 8월까지 무려 54개월째다. 유출되는 외화보다 유입되는 외화가 더 많다는 것인데, 이는 다시 말해 달러화가 갑자기 부족해져서 생길 수 있는 금융불안 걱정은 어느 정도 덜어도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독일 중국 등을 제외하면 우리나라의 경상수지는 상대적으로 매우 견조한 편이다.

‘외화곳간’인 외환보유액이 현재(8월말 기준 3754억6000만달러) 역대 최대 규모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다만 이런 흑자 행진에도 오명이 있었으니, 바로 ‘불황형 흑자’다. 수출이 죽을 쑤는 와중에 수입은 더 크게 줄어서 생긴 말이다. 지난 7월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10.1% 감소했는데, 수입은 더 감소(15.1%↓)했던 게 대표적이다. 월급이 쪼그라들어서 씀씀이를 더 줄이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면 가계 경제든 나라 경제든 움츠러들게 마련이다. 해외 시각에서 우리나라는 ‘건실한 경상흑자국’이었지만 그렇다고 마냥 웃을 수만도 없었던 셈이다.

그런데 최근 이런 불황형 흑자 구조에 변화의 기미가 보여 관심이 모아진다.

8월 상품수입 증가율 23개월 만에 플러스 전환

4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8월 경상수지는 55억1000만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이는 전월(86억7000만달러) 대비 흑자 규모가 축소된 것이다. 8월 상품수지의 흑자 규모는 73억달러다. 이 역시 7월(107억8000만달러)보다 30억달러 이상 감소했다.

주목할 것은 수출과 수입 동향의 변화 조짐이다. 8월 수출은 417억달러 규모로 전월 대비 3.1% 줄었다. 최근 두자릿수 마이너스(-) 증가율을 보였던 것과 비교하면 그나마 양호해진 것이다. 더 눈에 띄는 건 수입이다. 344억달러 규모로 전월 대비 0.6% 증가했다. 수입이 플러스(+)로 전환한 건 2014년 9월(0.2%↑) 이후 23개월 만이다. 7월만 해도 -15.1% 증가율을 보였다.

8월 수입 증가율이 더 높아 빠져나간 외화가 더 많았고 그래서 경상수지가 감소했지만, 그보다 수출과 수입이 동시에 반등 조짐을 보인 의미가 더 크다는 해석이 많다. 한은 관계자는 “8월 경상수지는 그리 부정적이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특히 자본재 수입이 전년 동기 대비 5.9% 증가(통관 기준)한 게 주목된다. 그 중 기계류·정밀기기 부문은 21.8% 올랐다. 전월(-12.3%)과 비교해 큰 폭의 반등이다. 최정태 한은 국제수지팀장은 “반도체 제조장비 등이 많이 수입됐다”면서 “이는 추후 국내 설비투자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수송장비 수입 증가율(7.2%)도 전월(-5.9%) 대비 높아졌다.

8월 수출도 다소 꿈틀댔다. 파업 영향으로 자동차 수출 증가율(-12.4%→-14.6%)은 하락했지만, 전기·전자제품(-7.5%→-2.8%) 철강제품(-9.4%→6.2%) 등의 수출 상황은 더 좋아졌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4일 오전 서울 중구 남대문로 한은 본관에서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 사진=방인권 기자


‘경상흑자 행진=한국경제 회복’ 등식 성립 안해

그렇다고 이게 추세라고 확신하긴 이르다. 당장 지난달(9월) 수출이 다시 고꾸라진 탓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9월 수출액은 409억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5.9% 감소했다. 8월 수출(2.6%↑)이 반등한지 한 달 만에 다시 감소세로 돌아선 것이다. 세계 경기가 둔화한데다 현대자동차(005380) 노조 파업, 삼성전자(005930) 스마트폰 갤럭시노트7 리콜, 한진해운(117930) 물류 차질 등 악재가 한꺼번에 겹친 탓이다.

수출이 다시 추락한 와중에 8월처럼 수입은 증가한다면 경상수지 흑자 규모는 더 줄어들 수 있다. 수입 역시 감소한다면 또다시 불황형 흑자의 늪에 빠질 수 있다. 이래저래 수출 불황은 우리 경제에 ‘나쁜 신호’라는 뜻이다.

더 나아가 경상수지 흑자가 계속됨에도 여전히 경기가 나쁘다는 점은 우려된다. 경상수지 흑자 행진, 사상 최대 외환보유액 등이 든든한 ‘외환 방파제’인 건 맞지만 실물경제 반등으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는 것이다.

수출과 수입이 동시에 증가하는 가운데 경상수지 흑자가 쌓이는 구조가 아닌데 따른 부작용이다.

이창선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경상수지가 흑자 행진을 벌여도 경기가 괜찮은지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다”면서 “경기가 좋아지면서 자연스럽게 흑자가 되면 제일 좋지만, 지금은 경기가 좋지 않은 와중에 흑자가 쌓여 원화 절상 압력만 더 커질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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