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때만 쏟아지는 ‘포퓰리즘’ 정책들
아동 성폭행 문제는 지난 2008년 조두순 사건을 계기로 수면 위로 떠올랐지만 전문가들은 사건 발생 후 4년여가 지난 지금까지 실효성 있는 정책은 여전히 부족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조두순 사건 당시 범행의 잔혹성과 범행에 대한 낮은 형량 등이 논란이 되면서 각종 대책이 쏟아졌다. 그러나 이후에도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폭행은 줄어들지 모르고 있다.
이처럼 사건 발생 때마다 각종 대책이 쏟아지고 있지만 실효성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박지선 경찰대 교수는 “매년 커다란 사건이 터지고 있지만 실제로는 정책적으로 달라진 점이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사건이 터질 때마다 보여주기식, 정치적 목적에서 성범죄 대책을 단기적으로 발표하지만 결국 무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지금도 화학적 거세 등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실제 입법화되기까지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는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사건이 발생하면 ‘포퓰리즘’적으로 정책을 쏟아내지만 시간이 흐르면 유야무야되고 마는 폐습이 되풀이되고 있다는 것이다.
경미한 처벌 수준과 허술한 범죄자 관리
전문가들은 여전히 처벌 수준이 낮고, 재발을 막기 위한 범죄자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점도 지적했다.
대법원 양형 기준에 따르면 13세 미만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의 경우 8년~12년을 선고하도록 하고 있다.
지난 2000~2010년까지 아동 청소년 강간범 중 35%는 3년 이상~5년 미만의 형을 받았고, 강간 범죄자 63.8%는 5년보다 낮은 형을 받았다. 기준 따로 선고 따로인 셈이다.
박 교수는 “아동에 대한 강제 추행의 경우 집행유예로 처리되는 경우가 가장 많다”며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니) 범죄자들에게는 성범죄를 저지르면 어떤 처벌을 받는다거나, 절대 범죄를 저지르면 안 된다는 인식 자체가 없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성범죄에 대한 재판부 인식 변화 필요
이수정 경기대 교수는 성범죄에 대한 재판부의 인식 변화를 강조했다.
이 교수는 “처벌 수준의 ‘하한선’이 중요하다”며 “실제 징역 기준은 강화가 됐지만 실제 적용이 되지 않고 있다. 양형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재판부의 영역”이라고 지적했다.
성범죄에 대해 가차없이 엄격한 형을 선고하는 서구 법원의 판결에 접근하지는 못할망정 최소한 양형 기준에 따른 강력한 형의 집행만이라도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재발 막기 위한 유효한 성범죄자 관리도 절실
재발을 막기 위한 성범죄자 관리가 부실하다는 점도 지적됐다.
‘아동·청소년 성범죄 발생 추이와 동향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아동 성범죄자의 62.2%는 전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수정 교수는 “인력 부족으로 관리 감독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전자 발찌를 차고, 신상 공개를 한 이들 조차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사후 검거는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예방은 힘들다”며 “경찰이 이들을 관리 감독할 수 있는 충분한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현재 정치권에서 논의되고 있는 ‘화학적 거세’에 대해서는 “약물을 사용할 필요도 있다고 본다”면서도 “전자발찌를 하고도 범죄를 저지를 만큼 관리가 안되는 상황에서 정기적으로 주사를 맞도록 하는 것이 가능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약물 사용을 통한 화학적 거세 또한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실효성이 없을 것이란 지적이다.
“이젠 정말 실효성있는 정책 내놓을 때”
정치권에서는 대선을 앞두고 앞다퉈 성범죄 관련 테스크포스(TF) 팀을 꾸리고 대책을 내놓고 있다.
지난 28일 새누리당이 성범죄의 친고죄 폐지 방침을 밝히자 민주통합당 또한 이에 동의하며 즉각 추진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정치권의 움직임에 미덥지 못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또다시 일시적인 인기 영합적 제스처에 그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번만은 정치권이 정말로 실효성있는 정책을 내놓아야 할 때”라고 주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