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산은을 재통합하면서 다이렉트 뱅킹 신규유치 금지 등 소매금융을 대폭 축소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큰 방향없이 정책금융기관을 떼었다 붙였다하며 수 천억원의 혈세를 낭비한 것도 모자라 국민보다는 은행 편에 섰다는 비판이 거셀 전망이다.
오락가락 정책에 우는 소비자
27일 금융위원회가 밝힌 산업은행 소매금융 축소의 이유는 ‘시장마찰 해소’에 있다. 정책금융기관인 산업은행이 기존 시중은행들과 경쟁하며 수신을 유치해온 만큼 이를 더 이상 확대하지 않고 점진적으로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2008년이후 민영화를 위한 수신기반 확대를 위해 2011년 9월 다이렉트 뱅킹을 출시한 산은은 지난해말 기준 원화예수금 조달비중이 53%(33조9550억원)로 산금채 조달비중(47%·30조660억원)을 넘어섰다. 물론 원화예수금 중에는 법인 예수금도 상당하지만, 7월말 기준 다이렉트 뱅킹 잔액은 9조 3900억원으로 전체 원화 조달금액의 14%를 차지하고 있다.
이가운데 금융위가 밝힌 통합 산업은행의 역할을 따져보면 다이렉트 뱅킹 축소를 납득하기 어렵다. 당초 금융위는 대내 ‘정책금융’ 역할만 산은이 수행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지만, 공개된 산은의 역할은 민영화 방침이전 정책금융에 창조경제를 위한 직접투자 확대, 창업·벤처기업 지원을 비롯해 온렌딩 등 정금공 주요기능까지 수행할 예정이다.
결국 내년 7월 재통합되는 산업은행은 4년전보다 더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할 전망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산은은 과거보다 더 많은 정책금융 업무를 수행하게 될 것”이라며 “다이렉트 뱅킹 축소는 시중은행과의 마찰을 신경 쓴 듯 하다”고 말했다.
만약 MB정부때 산업은행이 소매금융 확대를 위해 우리금융(053000)이나 HSBC 등을 인수했다면 산은 재통합은 사실상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산은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M&A보다는 시중은행보다 조금 높은 금리를 제공하는 다이렉트뱅킹(저비용) 상품으로 CIB로의 발돋움을 준비해왔다. 실제 이번에 정부가 밝힌 산은의 향후 발전방향은 올 초 기업은행 모델을 제시한 산업은행의 자체 방안과도 유사하다.
대우증권 팔고 IBK증권 안 팔고?
통합 산은은 정책금융에 CIB업무까지 모두 수행하지만, 산은자산운용, KDB캐피탈 등 자회사는 매각하기로 했다. 대우증권(006800)은 시장안정 기능과 우리투자증권 매각상황을 보며 향후 매물로 내놓을 계획이다. 기업은행(024110)의 경우 중소기업정책에 있어 IBK캐피탈과 IBK증권은 모두 필수적이라 매각하지 않을 방침이다. 기업은행 자회사의 규모가 크지 않아 시장 마찰보다는 정책금융 역할이 더욱 중요하게 판단한 것이다.
또 수출입은행으로 일원화하려던 대외 정책금융의 경우 현 수은(대출)과 무역보험공사(보험) 체제를 유지한다. 다만 1년 미만의 단기비중을 줄이고, 해외건설·플랜트 등 중장기, 고위험 업무에 집중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선 정부의 추가 출연, 출자가 필수적이다.
정책금융기관의 업무중복을 피하기 위해 해외 프로젝트의 64%를 보증했던 무보의 정책금융기관 보증을 없애면 해외프로젝트 수주 시 조달비용 상승 등도 감내해야 할 부분이다. 박근혜 대통령 공약인 선박금융공사 설립은 무산됐지만, 정책금융기관들의 선박금융 업무(100여명)를 부산으로 옮겨 해양금융종합센터(가칭)로 통합한다. 또 해운보증기금은 민간재원을 50%이상 들여 내년 상반기까지 설립 여부를 검토하기로 했다. 이같은 대외 정책금융 확대에는 글로벌 경기 회복이 관건이다.
고승범 사무처장은 “정금공과 산은의 역할 중복이 많고, 글로벌 금융위기이후 환경이 바뀌어 재통합이 불가피하다”며 “연내 정기국회에서 산은법 전부개정안을 통과시켜 내년 7월 통합 산은으로 출범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당과 야당이 바뀐 것도 아닌데 4년 만에 원점으로 되돌리는 금융당국의 입장으로는 옹색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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