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은 같은 당에 있었지만 달라도 너무 달랐다. 베스트셀러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에 빗대 ‘화성 재인, 금성 철수’란 말이 당 안팎에서 꾸준히 회자되기도 했다.
두 사람 곁에 있는 주변 사람들만 봐도 결별이 예고됐다는 뒤늦은 분석도 나온다. 친노를 중심으로 하는 86그룹(60년대생 80년대 학번 운동권 세대)과 비노 및 호남 세력 간의 갈등은 2003년 열린우리당 창당 때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뿌리가 깊다.
2012년 야권 대선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쌓인 양측의 앙금과 불신도 ‘건너서는 안 되는 강’을 건너게 한 결정적인 이유가 됐다. 최근 지도체제 논란에서 당시 단일화 정국이 떠오른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흘러나왔다.
지난달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남긴 ‘통합과 화합’이란 유훈은 우리 사회에 묵직한 울림을 남겼다. 극단적인 대립과 대결의 정치에서 벗어나 ‘정치의 복원’이 절실하다는 점은 누구나 공감하는 대목이었다.
YS와 DJ(김대중 전 대통령)는 평생에 걸친 맞수였지만 민주화를 향한 염원만은 같았다. YS와 DJ가 힘을 합쳐 만든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는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냈다.
문재인·안철수 두 사람 간의 반목은 야권의 실패로 직결된다. 내년 총선에서 분열된 야권이 참패하면 정부여당의 독주가 심해져 오히려 안정적인 국정운영이 어려워질 수 있다. 강한 야당이 있어야 정부여당과의 타협의 정치도, 정치의 복원도 가능하다. 결국 안철수는 떠나고 문재인만 남았지만 두 사람에게 주어진 시대적 사명은 현재 진행형이다.
▶ 관련기사 ◀
☞ 안철수 "文과 통화했지만 혁신전대 설득 실패"(종합)
☞ [포토]홀로서기 나선 안철수 '새정련 떠납니다'
☞ 박주선 “안철수 의원 용기있는 결정 환영”
☞ 安, 文 방문에도 의원들 중재에도…탈당 결심 굳혔나
☞ 갤럽 "文(15%)·安(10%) '지지층 결집' 지지율 동반상승"(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