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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강경록·양승준 기자] 직장인 고재민(37·홍제동) 씨는 ‘골찾사’(골목길을 찾는 사람)다. 회사 일로 스트레스가 쌓이면 퇴근길 술집 대신 서울 종로구 가회동 골목길로 향한다. 고씨는 “직장 동료와 술로 스트레스를 풀면 되레 몸만 피곤하다”며 “혼자 조용하게 골목길을 걷다 보면 몸도 마음도 가벼워져 ‘정말 내가 쉬고 있구나’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한옥으로 둘러싸인 고즈넉한 길을 걸으면 일상에서 쌓인 ‘독’이 빠져나가는 것 같단다.
“옛 정취를 느끼고 싶어서요.” 프리랜서로 일하는 강순경(40·만리동) 씨는 23일 오전 친구와 서울 종로구 부암동 골목길을 걸었다. 인터넷을 검색해 일부러 오래되거나 좁은 길을 찾아다니는 게 강씨의 취미. 산책길에 만난 그녀는 “요즘 들어 옛날 생각이 많이 나 개발이 안 된 골목길을 찾아다닌다”며 “옛 담벼락을 보며 내 추억을 찾고 여유를 얻는다”며 웃었다.
그 배경을 사회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30~40대는 유년시절을 골목길에서 보내다 그 길이 사라지고 고층아파트가 뻗는 걸 지켜본 이들이다. 성과지향주의로 인한 날선 사회 속 피로도가 가장 높은 세대이기도 하다. 문화평론가 이택광 경희대 영미문화학부 교수는 “이들이 골목길을 찾는 건 현실의 지나친 피로감에 대한 반작용”이라고 봤다. 과거에 없애야 된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이상화해 위안을 얻는 현상이라는 분석이다.
골목길 여행을 ‘자아찾기’로 보는 의견도 있다. 손석한 연세신경정신과 원장은 “큰길에 서면 자신의 존재감을 제대로 느낄 수 없지만 골목길에선 다르다”며 “나는 물론 주변도 내가 주도할 수 있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게 소로(小路)를 걸을 때 느낄 수 있는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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