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윤대 KB금융(105560)지주 회장이 13일 공식 취임 직후 총체적 위기에 직면한 KB금융을 향해 뼈아픈 한마디를 던졌다. 대부분의 최고경영자(CEO)가 취임사를 통해 `장밋빛 전망`을 내놓는 것과는 정반대의 분위기였다.
어 회장은 취임사를 읽기 전 "준비해 온 취임사가 너무 길어 미안하다"는 말로 시작했다. 장장 10페이지에 달하는 취임사였다. 그만큼 지난 3주동안 내정자로서 업무보고를 받으면서 생각보다 더 곪아 있는 KB를 발견했고 충격도 컸던 것으로 읽힌다.
그는 취임사를 읽어내려가는 동안 `비만증`이란 단어를 여러차례 언급했다. 비용절감 등을 통한 다이어트와 경영효율화를 이루는데 경영방침의 방점을 찍고 있었다.
어 회장은 취임 직후 기자회견을 통해 "우선 체질을 강화해야 한다. (KB금융이) 건강해 질 때까지 당분간 인수합병(M&A)은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지만 취임사 곳곳에서는 메가뱅크(초대형은행)를 원칙적으로 찬성하는 속내를 드러냈다.
키워드1. 비용절감
어 회장이 `비용 대비 수익비율(Cost to Income Ratio)`이란 경영지표를 비만증의 근거로 내세운 것이 눈에 띈다. 지난 2005년 이 비율이 42%였으나 2009년 54%수준으로 악화됐다는 것. 스페인의 산탄데르은행이 같은 기간 54%에서 현재 42%로 개선되고, 국내은행들도 상당폭 하락하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고 지적했다.
어 회장은 이 지표를 가장 중요한 경영지표로 삼고, 경영정상화가 될 때까지 전 그룹의 비용절감 운동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취임사에 없던 "나도 월급 일부를 줄이겠다"는 깜짝 발표를 하기도 했다.
전 임직원의 고통분담을 요구하기 위한 사전포석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은행 비용의 대부분은 급여나 복리후생비 등의 인건비가 차지한다. 어 회장이 취임사 서두에서 "경쟁사와 비교해 많은 인력의 고령, 고임금 구조로 허리가 휘고 있다"고 말한 것이나 지난해 몰락한 미국의 제너럴 모터스를 예로 들며 "고질적인 고비용 경영구조의 개선을 도외시한 결과"라고 언급한 것이 이런 맥락으로 풀이된다.
키워드2. 리스크관리
어 회장은 경영효율화를 위한 당면과제의 하나로 리스크관리 체계의 선진화를 꼽았다. 부실 증가, 금리 변동성, 규제 변화 등의 리스크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면 아무리 경영효율화를 잘 한다고 해도 한 순간의 실수로 그룹 전체가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 회장은 특히 몇몇 특정 산업에서 커지고 있는 위험들이 부실채권 증가로 연결돼 KB금융 수익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업무보고를 통해서 이미 확인했다.
이에 따라 어 회장은 "그룹 리스크관리 시스템의 중복되는 부분은 일부 단일화하면서 좀 더 과학적으로 체계화해 나갈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이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최근 은행들에서 대형 금융사고가 잇따르고 있는 점을 의식해 "임직원 여러분도 일상의 리스크관리에 노력해 금융사고 예방에 각별히 유념해 달라"고도 당부했다.
우리금융(053000) 등 대형 금융회사에 대한 인수합병(M&A)을 직접적으로 거론하지 않았지만 대형화를 통한 글로벌 금융그룹화에 대한 어 회장의 평소 지론은 취임사 곳곳에서 엿보였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원전을 수주할 때 규모면에서 세계적인 은행이 없다는 이유로 지급보증조차 할 수 없었다는 점이나 ▲삼성 LG SK 등 글로벌기업들의 해외 일일 자금관리 및 관련 외환서비스도 모두 서구 은행들에 빼앗기고 있는 점 ▲현대 기아차가 해외에서 연간 수백억불의 자동차를 팔지만 관련 소비자금융은 대부분 해외은행의 몫이고 그 수익도 그들에게 넘어가고 있는 점 등을 조목조목 설명했다.
이처럼 국내은행들의 몫을 해외은행들이 차지하는 것은 규모 면에서 경쟁상대가 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 결국 메가뱅크를 통해 글로벌 은행을 키워야 한다는 속뜻을 내비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어 회장이 기자들의 질문에 당분간 M&A에 나서지 않겠다며 큰 뜻(?)을 굽힌데는 그만큼 KB금융의 직면한 문제들이 너무 컸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는 "밖에(회장 후보 선출 전) 있을 때 보다 내정자 신분으로 지난 3주간 살펴보니 KB금융의 체질이 약화돼 있었다"며 "2년이 되든 5년이 되든 건강해질 때까지 그런 일(M&A)이 없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이 말은 뒤짚어 보면 KB금융의 체질이 건강해지면 다시금 메가뱅크를 위한 M&A에 나설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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