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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K가 호기롭게 자주 떠들어 대던 말이다. 대학 생활 내내 장학금을 놓치지 않았던 녀석은 무리 중에 가장 먼저 취업에 성공했다.
유명 애니메이션 밈(meme·인터넷 유행 콘텐츠)처럼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을 시전하며 보란 듯 퇴사하고 싶지만, 다음 달 카드 값 걱정에 오늘도 꾸역꾸역 출근한다는 말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농담처럼 건넸던 이 말을, 쉽게 웃어넘길 수 없게 됐다. 지난달 ‘일’이나 구직활동을 하지 않고 ‘그냥 쉰’ 청년(15∼29세)이 44만명을 넘어섰다. 이는 7월 기준 역대 최대치이자, 전체 청년의 5%를 넘는 수치다.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3포 세대’라는 말이 2011년 언론에 등장한 지 꽤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청년들의 절망은 더 커졌다.
안세영 측에 따르면 2017년 중학교 3학년 때 처음 국가대표로 발탁된 뒤 7년 내내 막내 생활을 하며 선배 라켓 줄 갈기, 선배 방 청소와 빨래를 도맡았고, 외출할 땐 19명의 선배에게 일일이 따로 보고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안세영의 주장은 ‘공정과 혁신’ 그리고 ‘기득권 포기’와 연결된다. 안세영은 “훈련방식이 몇 년 전과 똑같다”, “양궁처럼 어느 선수나 올림픽에 나가 메달을 딸 수 있으면 좋겠다”며 선수 육성과 훈련 방식의 개선을 요구했다.
협회와 제도가 기득권이 되어 변화를 가로막는 이러한 구조적 문제는 여전히 도처에 있다. 체육·정치·사회 분야는 물론이고 기업 조직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는 시대적 과제인 것이다. ‘너만 그런 게 아니다’, ‘넌 특혜 받고 있는 것’이라는 기성세대 시각에서 왜곡해선 안 된다. ‘그냥 쉬는’ 청년에 “눈높이를 낮추라”, “노력은 해봤나”라는 말도 무책임하다. 한국 사회에서 대기업-중소기업, 정규직-비정규직-하청으로 뚜렷하게 갈라지는 삶의 궤적은 고개만 돌리면 확인할 수 있는 일이다. 청년 세대의 좌절이 기성세대가 겪은 배고픔의 무게보다 가볍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다.
서울 마포구에서 아이스크림 가게 ‘녹기 전에’를 운영하는 박정수(녹싸) 씨가 펴낸 책 ‘좋은 기분’(북스톤)에는 이런 문구가 나온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를 대하는 일을 합니다.” 요즘 자주 곱씹는 말이다. 우리 사회에 지금 가장 필요(부족)한 건 세대 간 이해와 인정, 환대의 마음가짐이 아닐까. 어쩌면 다정한 안부를 건네는 일일지도 모른다.
“다정한 마음이 몇 번이고 우리를 구원할 테니까.”(백수린의 장편소설 ‘눈부신 안부’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