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톺아보기]대한해운은 왜 `셀프 반대`를 해야했나

3일 임시주총서 한진해운 자산인수 안건 압도적으로 반대
주식매수청구권 부담으로 대한해운 측도 반대표 행사
계약주체 대한해운→SM상선 변경외에 달라지는 것 없어
경험없는 컨테이너선 우려 시각도…주주 소통 지속해야
  • 등록 2017-01-06 오후 12:27:00

    수정 2017-01-06 오후 12:27:00

임시주주총회 부결내용을 알리는 대한해운 공시화면(2017년 1월 3일 기타경영사항 공시)


[이데일리 박수익 기자] 지난 3일 대한해운의 임시주주총회에서 한진해운 자산 인수 안건이 부결됐습니다. 3분기보고서상 대한해운의 최대주주 지분율은 50.19%여서 특별결의 사안이라해도 찬성의결권을 확보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어 보였지만 결과는 부결이었습니다.

그런데 찬성률이 1.8%에 불과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대한해운 최대주주 측만 찬성해도 50%를 확보하고 들어가는데 찬성률이 1.8%였다는 것은 결국 대한해운 측도 반대표를 던졌다는 얘기입니다. 대한해운 측은 “사전에 집계된 주주들의 반대의사표시가 상당히 많았고 회사도 주주 의사를 존중한다는 측면에서 안건을 강행하지 않기 위해 반대표를 행사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안건 통과됐더라면 감당 못했을 주식매수청구권

대한해운이 이처럼 ‘셀프 반대’를 한 것은 주식매수청구권 부담이 일차적입니다. 회사가 추진하려는 주요사항에 찬성하지 않는 주주가 자신의 보유주식을 합당한 가격에 되사달라고 청구하는 것이 주식매수청구권입니다. 일종의 이혼 위자료와 비슷합니다. 회사 정책에 반대 입장이 명확하니까 ‘만약 안건이 통과되면 난 더 이상 당신네 주주로 있고 싶지 않다’는 뜻을 회사에 전달하는 것입니다. 주총 전 서면으로 증권사에 반대의사를 표명하면 회사는 정해진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가격으로 반대주주들의 주식을 의무 매입해야합니다.

이번 대한해운의 주식매수청구권 가격은 주당 1만7602원이었습니다. 단순 계산으로 최대주주 지분을 제외한 기타주주가 보유한 주식은 1200만주 가량인데, 이중 지분율이 높은 국민연금과 삼성자산운용(작년 9월말 기준)만 350만주를 보유중이니까 이들이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했다면 600억원이 넘습니다. 다른 주주들까지 주식매수청구권 행렬에 동참하면 1000억원은 쉽게 넘어갑니다. 얼마나 많은 주주들이 주총 전 주식매수청구권 행사의지를 표명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대한해운은 한국예탁결제원을 통해 사전 취합된 행사총액을 알 수 있었고 이를 근거로 자신들의 입장을 주총전에 이미 결정한 것입니다.

대한해운이 한진해운 주요자산을 275억원에 최종인수키로 했는데요. 275억원짜리 물건사는 대가로 1000억원이 족히 넘을 위자료를 물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대한해운도 당연히 반대표를 던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이번 안건은 최대주주마저 셀프 반대하면서 압도적으로 부결됐고 주식매수청구권은 없던 일이 됩니다. 주식매수청구권은 안건 통과를 전제로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에 부결이후엔 회사가 사줄 의무가 없습니다. 안건이 부결되자 대한해운의 당일 주가는 오히려 올랐습니다. 주식매수청구권 자금 부담 뿐 아니라 기관투자가와 소액주주들 다수가 반대하는 상황에서 대한해운이 당초 계획을 무리하게 강행하면 앞으로의 주가는 물론이고 향후 경영부담이 지속될 우려가 있는 점도 감안했을 것입니다.

주총 부결이후 달라지는 것? 계약주체 변경 뿐

안건이 부결되면서 달라진 것은 한진해운 자산을 인수하는 주체입니다. 주총 전까지는 대한해운이 자산 인수계약의 당사자였지만 주총에서 이 안건이 부결됐기 때문에 계약당사자는 SM해운(신설법인)으로 바뀔 예정입니다. 법원 허가 절차를 밟아야하기 때문에 인수대금을 지급하는 날짜도 당초 5일에서 수일간 미뤄집니다.

회계처리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대한해운이 인수주체가 되고 실질적인 지배력을 가지기 때문에 연결재무제표로 반영해야할 사안이지만, 대한해운의 출자금액 축소 여부와 SM그룹차원의 경영판단에 따라 회계처리 방식이 달라질 수는 있습니다. 일단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이번 주총 부결로 대한해운은 부담을 덜었다는 분석을 내놓았습니다. 다만 대한해운이 인수주체로 전면 나서지 않을 뿐 모그룹인 SM그룹 차원에서 한진해운 자산을 인수하고 대한해운도 주요 출자자로 참여하는 것은 변함없습니다. 계열사 중 해운업을 하는 곳은 대한해운 한 곳이기 때문에 향후 경영상 긴밀도도 다른 계열사보다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관광버스업체가 장거리시외버스 사업에 뛰어든다면?

작년 5월28일 주식톺아보기 ‘해운업 다시보기’ 편에서 해운업을 육상운수업에 비교해보면 컨테이너선사는 대중교통으로 누구나 이용하는 일반버스, 벌크선사는 사전계약을 맺은 사람이 이용하는 전세관광버스와 비슷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컨테이너선에는 여러 물건주인(화주)들의 다양한 물건이 실리지만 벌크선에는 단일 주인의 단일 품목이 실리기 때문입니다. 유동성위기를 심하게 겪은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은 컨테이선사 중에서도 먼 거리를 오고가는 원양컨테이너선사이고 대한해운·팬오션은 벌크선사입니다. 대한해운은 포스코에 전달해줄 철광석이나 한국전력에 배달할 석탄 같은 품목을 배로 운반하는 일을 합니다.

이러한 대한해운이나 모그룹인 SM그룹은 지금까지 현대상선·한진해운같은 원양컨테이너 운송업 경험이 없습니다. 더구나 컨테이너시황이 바닥을 쳤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현 시점에 한진해운 자산 인수에 나섰기에 비용부담과 함께 업황리스크를 우려하는 주주들의 목소리가 이번 주총 결과에 나타난 것입니다. 아울러 대한해운은 현대상선·한진해운에 앞서 지난 2011~2013년 혹독한 구조조정으로 법정관리까지 경험한 회사입니다. 지금까지 경험하지 않은 새로운 업종에 뛰어드는 도전정신 자체는 칭찬할 만하지만 그 과정에서 주주들이 납득할만한 경영전략과 소통을 지속적으로 긴밀하게 해나가야 한다는 점은 이번 대한해운 주총이 남긴 과제입니다.

대한해운의 전용선 계약 현황.(자료: 신영증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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