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일본 침략에 맞서 항일의병운동을 이끈 면암 최익현(1833~1907)의 의복 등이 국가민속문화유산이 된다.
| 면암 최익현(1833~1907)의 의복인 단령. (사진=국가유산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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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청은 최익현의 의복인 단령(團領)과 머리에 썼던 사모(紗帽), 허리띠인 삽금대(鈒金帶), 호패(號牌), 목화(木靴) 등 총 5건의 유물을 국가민속문화유산 ‘면암 최익현 관복 일괄’로 지정 예고했다고 1일 밝혔다.
최익현은 사헌부 지평, 사간원 정원 등 여러 관직을 지냈으며 1905년 일제가 대한제국 외교권을 박탈하는 을사늑약을 체결하자 이에 반발해 전북 태인(현 정읍)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70대 나이에 의병장 활동을 하다 체포돼 대마도에 유배돼 1907년 순직했다.
이번에 지정 예고되는 5건의 관복 일괄은 19세기 후반기 복식 연구뿐 아니라 공예 기술과 재료 연구를 위한 실증적 자료로서 가치가 높다고 국가유산청은 설명했다.
단령은 최익현이 당하관(堂下官)이던 시기(1855~1870)에 착용한 것이다. 조선 후기 전형적인 당하관용 흑단령(黑團領)의 형태와 제작 양식을 지니고 있다.
사모는 양쪽 뿔에 얇고 성근 평직 원단이 겹으로 씌워져 어른거리는 무늬가 생기는 것이 특징이다. 당상관(堂上官)용 관모로서 최익현이 당상관의 관직을 받은 1870년 이후의 것이다. 대나무와 한지로 모자 틀을 만들고 양쪽 뿔의 테두리에 가늘게 쪼갠 대나무를 사용한 점 등 조선시대 사모 제작 기술과 기본 재료를 확인할 수 있는 유물이다.
| 면암 최익현(1833~1907)의 사모. (사진=국가유산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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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금대는 개항기 조선에 소개된 셀룰로오스 나이트레이트(cellulose nitrate)로 추정되는 신소재로 제작한 모조(模造, 본떠서 만든) 대모(玳瑁) 재질의 띠돈을 부착해 제작한 것이다. 19세기 말 공예 기술의 변화 양상을 대변하는 유물로서 가치를 지닌다.
호패는 제작 연대(을묘·乙卯, 1855년)와 최익현의 이름(崔益鉉)이 새겨져 있어 착용자와 제작 시기를 분명하게 밝혀주고 있다. 목화는 신의 밑창이 앞코까지 올라오는 형태에서 평평한 형태로 변화하는 과도기에 해당하는 1870~1880년대의 유물로서 이 시기 목화 제작 기술을 파악할 수 있다는 자료적 가치가 있다.
국가유산청은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 예고한 ‘면암 최익현 관복 일괄’ 5건에 대해 30일간의 예고기간 중 수렴된 의견을 검토하고, 문화유산위원회 심의를 거쳐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