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의장의 중재안은 국회가 대통령령 등 행정입법에 대해 수정·변경을 ‘요구할 수 있다’는 문구를 ‘요청할 수 있다’로, 중앙행정기관장은 수정·변경 요구받은 사항을 ‘처리한다’는 표현을 ‘검토하여 처리한다’로 바꿔 강제성을 완화한 내용이다. 정 의장은 지난 5일 국회-청와대 대치 국면을 해소하기 위해 여야 원내대표를 만나 이같은 중재안을 제안했다.
중재안 제시가 가능했던 것은 국회법 97조에 의해서다. 97조에 따르면 ‘본회의는 의안의 의결이 있은 후 서로 저촉되는 조항·자구·수자 기타의 정리를 필요로 할 때에는 이를 의장 또는 위원회에 위임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위임받은 권한 내에서 의장이 문구를 수정하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위임의 전제는 여야 합의다. 다만 문구 수정에 여야가 합의하지 못하면 애초 본회의에서 통과됐던 개정안을 정부에 이송해야 한다. 의장실 관계자는 “권리행사 의미가 강한 요구를 요청으로 바꾸고 정부의 주체적 판단의 범위를 넓혀준 검토하여를 넣으면 강제성이 희석될 것으로 보이는데, 핵심은 요구를 요청으로 수정하는 것”이라며 “여야협상 가능성을 보고 개정안 정부 이송을 판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새정치연합 지도부 유연성 발휘 기대 = 여야 원내지도부는 9일 비공개 접촉을 통해 문구 수정 관련 의견 조율을 시도했으나 합의에 이르진 못했다. 새누리당은 중재안에 대해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여당 입장에서 의장 중재안에 대해서 반대할 이유는 없다”며 “야당이 어떤 입장을 정할지 기다리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최원식 의원은 당 원내대책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요청’과 ‘검토 후 처리’ 문구에 대해 “그 정도까지는 괜찮지 않느냐는 의견이 있었다”고 전했다. 반면 강기정 정책위의장은 “원내지도부도 요구를 요청으로 하는 것만 검토하는 것이지 뒤에것(검토하여 처리해 보고한다)은 여지가 없다”며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원칙대로 또 표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당 지도부가 의장 중재안을 수용하기로 해 빠르면 이번주중에 여야 합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한 의원은 “요구는 딱딱한 표현이고 요청은 예의를 갖춘 표현으로, 둘 다 법률상 용어는 아니다. 검토를 넣어도 처리한다만 있으면 별 문제가 없다. 원내대표와 당대표가 유연성을 발휘하자는 입장인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위헌 시비를 제기했던 청와대는 넘어오지 않은 문구 수정 개정안에 대해서 입장을 밝힐 단계는 아니라는 분위기다. 아직 박근혜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언급했던 거부권 시사에서 바뀐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여야가 강제성을 완화한 중재안을 논의하는 것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기류가 읽힌다. 메르스 확산으로 인해 국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라, 정 의장의 중재안이 정부로 이송되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국회 관계자도 “강제성이 완화되면 합헌이라고 하는 것이 헌법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국회가 고쳐주면 청와대가 받아들일 것으로 본다. 이렇게까지 고쳤는데 거부권 행사한다는 것은 새누리당 비박지도부를 찎어 내겠다는 것으로 비박과 친박간의 전면전이 벌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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