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고준혁 기자] 러시아의 ‘에너지 무기화’에 맞서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회원국들에게 가스 사용 감축을 주문하고 있으나 현실화되기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러시아에 대한 가스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남유럽 국가들이 EU 집행위의 감축 목표가 과하다며 반기를 들고 나섰기 때문이다.
| (사진=AF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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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스페인 등 일부 남유럽 국가들은 지난 20일 EU 집행위가 밝힌 15% 가스 사용 감축 방안에 반대하고 있다. 집행위는 러시아의 가스 공급 중단이 우려된다며 다음 달부터 8개월 동안 회원국들이 2017~2021년에 쓴 가스 사용량의 평균치에서 15%를 줄이는 방안을 제시했다.
FT는 남유럽 국가들은 대개 러시아에 대한 가스 의존도가 낮다는 점을 짚었다. 유럽 전체의 러시아 가스 의존도는 40%에 달하지만, 남유럽 국가들은 이보다 낮아 러시아가 공급을 끊는다 해도 굳이 가스 사용을 줄일 필요가 없다고 본 셈이다. 가스 사용량을 감축할 경우 기업들의 공장 가동 차질 등 국가 경제에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 집행위의 기본 방향이지만, 에너지 위기가 심각하다고 판단되거나 회원국 중 3곳이 요청할 경우 강제력을 발동하는 조치도 구상하고 있다. 남유럽은 EU가 강제력을 동원할 수 있는 조건을 더 까다롭게 해 그럴 일이 벌어지지 않는 것을 원하고 있다. 최소 5개 국가가 요청한 뒤 회원국 27곳 중 과반수가 찬성해야 EU가 의무적인 가스 수요 감축을 부과할 수 있다는 식이다. 남유럽은 또한 가스 감축 시기도 다음 달이 아닌 오는 10월을 주장하고 있다.
가스 사용량 감축은 오는 25일 EU 대사 회의와 26일 EU 에너지장관 회의에서 연달아 논의될 예정이다. 집행위가 원하는 안건이 정식으로 상정된 뒤 발효되려면 EU 전체 인구 65% 이상을 대표하는 15개 회원국의 찬성을 얻어야 하는데,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 유럽판은 진단했다.
한편 올겨울 유럽의 에너지 부족 위기 우려는 고조되고 있다. EU는 2027년까지 러시아 가스 수입을 완전 차단하겠다는 목표 아래 점진적으로 수입량을 줄이고 있다. 러시아 측이 서방 제재의 보복 차원에서 급작스럽게 가스 수송을 중단하는 것도 영향을 주고 있다. EU 집행위가 회원국 가스 사용 15% 감축안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을 때도 “러시아 크렘린궁이 가스 수출을 무기화함에 따라 EU는 러시아의 추가적인 가스 공급 중단 위험에 직면해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