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겨 봐요" "패고 싶은데 참는다"…부부카톡에 남은 정인이 학대 정황

검찰, ‘정인양 양아버지’에게 징역 7년6월 구형
‘카톡 대화’ 증거…“아내 학대 행위 인지” 주장
양부 “학대·폭행 알았다면 이혼해서라도 막아”
변호인 “아내가 학대 숨겨”…양모도 같은 진술
  • 등록 2021-04-15 오후 12:13:02

    수정 2021-04-15 오후 12:13:02

[이데일리 박순엽 기자] 검찰은 지난해 입양 이후 지속적인 학대로 생후 16개월 여아 정인(입양 전 본명)양을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양어머니에 대해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구형하면서 양아버지에게도 그 책임을 물었다. 검찰은 그가 엄마로부터 아내가 아이에게 저지른 학대와 폭행을 눈치채고도 아무런 구호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양부모의 학대로 숨진 ‘정인이 사건’ 2차 공판이 열린 지난 2월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으로 입양부 안모씨가 들어가고 있다. (사진=뉴시스)
카카오톡 메시지에 남은 ‘굶겨 봐요’·‘귀찮은 X’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3부(재판장 이상주) 심리로 지난 14일 진행된 정인양 양어머니 장모(35)씨와 양아버지 안모(38)씨에 대한 결심 공판에서 검찰은 안씨에게 징역 7년 6월형을 내려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검찰은 “안씨는 장씨의 행위를 방관하면서 아이가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당하도록 했고, 결국 사망하게 내버려둔 것”이라고 구형 이유를 설명했다.

이날 검찰은 여러 증거를 통해 장씨가 정인양에게 저지른 학대와 폭행을 남편인 안씨가 인식했으리라 추측했다. 검찰이 발췌한 이들의 카카오톡 메시지에 따르면, 입양 직후인 지난해 2월 정인양이 콧물을 흘리는데도 장씨가 ‘얘(정인양)는 기침도 장난 같아. 그냥 두려고’라는 메시지를 보내자 안씨는 ‘약 안 먹고 키우면 좋지’라고 맞장구를 쳤다.

그해 3월엔 장씨가 정인양을 두고 ‘오늘 온종일 신경질. 사과 하나 줬어. 대신 오늘 폭력은 안 썼다’고 하자 안씨는 ‘아침부터 그러더니 짜증이 갈수록 느는 것 같아’라고 답했다. 검찰은 이에 대해 “메시지 내용에 비춰보면 입양 초기부터 장씨가 아이를 폭행한 것으로 보이고, 안씨도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안씨는 또 오히려 장씨의 학대를 부추기는 듯한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장씨가 지난해 9월 ‘애가 미쳤나 봄. 지금도 (밥을) 안 처먹네’라고 하자 안씨는 ‘종일 온전히 굶겨 봐요. 식도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니겠지?’라고 응답했다. 장씨가 이와 관련해 이틀 후 ‘쌍욕 나오고 패고 싶은데, 참는다’고 말하는 상황에서도 안씨는 ‘잘했어. 기도한 보람이 있네’라고만 답했다.

아울러 안씨는 정인양을 스스럼없이 비난하기도 했다. 장씨가 지난해 3월 ‘어린이집 선생님들이 안아주면 안 운다’고 보내자 안씨는 ‘귀찮은 X’이라고 대답했다. 검찰은 “정인양은 이들을 부모로 선택하지 않았지만, 의지와 상관없이 입양돼 입양 초기부터 귀찮은 존재가 됐다”며 “장씨 폭행과 안씨 방관으로 사망까지 이르게 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양부모의 학대 끝에 숨진 16개월 된 입양 딸 ‘정인이’의 양부모의 결심 공판이 열린 지난 14일 오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 입구에서 시민들이 양모가 탑승한 것으로 보이는 호송차를 향해 팻말을 들고 항의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아내의 학대 몰랐어…카톡 대화는 지극히 사적 대화”

그러나 안씨는 이날 공판 내내 장씨가 정인양을 학대하고 폭행한 사실을 당시엔 알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안씨는 “(장씨가) 훈육 차원에서 손등이나 엉덩이를 ‘떼찌떼찌’ 수준으로 때리는 건 알았고, 아내에겐 그것조차 좋지 않다고 말했다”며 “아이를 때리는 걸 알았다면 이혼을 해서라도 막았을 건데, 아내가 아이를 학대하고 있다는 생각을 못했다”고 말했다.

안씨는 검찰이 제시한 메시지에 대해 “대부분 회사에 있을 때, 카카오톡 메시지로 일일이 대응하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주고받은 것”이라며 “(아내가 짜증을 내는 상황에서) 바른 소리를 하면 화를 더 돋운다는 걸 잘 알기 때문에 일단 (아내 기분을) 맞춰주고, 집에 와서 아이들을 재운 뒤 아내와 잘못된 부분에 대해 얘기했다”고 토로했다.

안씨는 또 정인양을 두고 ‘귀찮은 X’이라고 표현한 이유와 관련해 “아이가 내려만 놓으면 우는 경우가 많아 조금 지쳐 잘못된 말을 한 것 같다”면서도 “아이를 키울 때 행복한 순간도 있으나 힘든 순간도 있고, 이를 공개적으로 말한 것이 아니라 아내와 지극히 사적인 대화를 나눈 것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안씨는 아이의 팔을 강제로 움직여 손뼉을 억지로 치게 한 혐의나 장씨가 웹캠을 켜두고 집 밖 외출을 하는 걸 알고도 방임한 혐의, 음식점에 갈 때 차에 영상통화만 연결해두고 정인양을 내버려두고 간 혐의 등 검찰이 자신에게 제기한 혐의에 대해 일부 인정하는 모습도 보였다.

양부모의 학대 끝에 숨진 16개월 된 입양 딸 ‘정인이’의 양부모의 결심 공판이 열린 지난 14일 오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 입구에서 시민들이 양모가 탑승한 것으로 보이는 호송차를 향해 손피켓을 들고 항의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안씨 측 “아내가 학대 사실 숨겨…방임 혐의 부인”

안씨 측 변호인은 “(학대 사실을) 예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그걸 숨길 만큼 아내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아내의 육아가 힘들겠지 싶어 맞춰준 것이지 학대가 있었으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며 “검찰은 몇 가지 메시지를 제외하곤 안씨가 같이 살았으니 (장씨의 학대를) 알았으리라는 막연한 추정 외엔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그의 방임 혐의를 부인했다.

변호인은 장씨가 남편이라도 자신의 편으로 두고 싶어 학대 사실을 숨겼다고 변론하기도 했다. 장씨도 이날 “끝까지 저를 믿어주고 희생해준 남편에게 배신감을 안겨준 점이 미안하다”며 “사랑하는 남편에게 (학대 사실을) 철저하게 숨기고 싶었고, 이로 인해 실망과 좌절, 괴로움, 사랑하는 딸의 죽음을 낳게 됐다”고 진술했다.

변호인은 이어 “피해자 아버지로서 아이의 손뼉을 억지로 치게 하는 등 정서적 학대를 가한 가해자이지만, 지금은 아이를 더는 볼 수 없어 누구보다도 힘든 유족이기도 하다”며 “안씨는 지금이라도 구형을 받아들이고 싶은 심정일 테지만, 그에게 하나 더 있는 딸을 다른 곳으로 보낼 수 없어 변론에 나서고 있다”고 재판부에 최대한 관용을 부탁했다.

안씨는 최후 진술에서 자신을 “아내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지 못하고, 큰 행복을 준 아이를 지키지 못한 나쁜 아빠”라고 칭하면서, “아픈 몸으로 세상을 떠난 아이 아빠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못해 아이에게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흐느꼈다. 그는 “분리불안을 심하게 느끼는 첫째만 아니면 목숨으로 책임을 지고 싶기에 선처라는 말을 입에 올리지 않겠다”고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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