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건희 회장이 선친인 호암 이병철 회장의 뒤를 이어 1987년 삼성그룹 회장으로 취임했다.(사진=삼성) |
|
[이데일리 이소현 기자] 25일 타계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한국의 삼성’을 ‘세계의 삼성’으로 키워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87년 이 회장이 취임한 당시 재계 순위는 현대에 밀린 2위였지만, 반도체, 모바일, 가전 분야 삼각 축으로 구성한 사업 구조로 재계 1위 수성은 물론 삼성을 글로벌 일류 정보기술(IT) 그룹으로 키웠다.
1997년 한국경제가 맞은 사상 초유의 외환위기와 2009년 금융 위기를 넘는 과정에서 인재와 기술을 중시하는 경영철학으로 현재 브랜드 가치는 623억 달러로 글로벌 5위, 스마트폰과 TV, 메모리반도체 등 20개 품목에서 세계 최고 상품을 기록하는 등 ‘초일류기업’ 삼성으로 도약했다. 이 회장 취임 당시 9조9000억원이던 삼성그룹의 매출은 2018년 386조원을 넘기면서 39배 늘어났고 시가총액은 1조원에서 396조원으로 396배나 커졌다.
첨단기술 강국…반도체 사업 세계 1위“우리 기업이 살아남을 길은 머리를 쓰는 하이테크(첨단기술) 산업밖에 없다고 생각해 과감히 투자를 결정했습니다.” 2004년 이 회장이 반도체 30년 기념식에서 전한 진출 일성이다. 설탕과 밀가루(제일제당), 면방직(제일모직)이 주력이었던 삼성이 사업 다각화를 통해 반도체 사업을 키운 것은 이 회장의 가장 큰 경영 업적으로 평가받는다. 창업주인 호암 이병철 회장이 ‘도쿄 선언’을 통해 반도체 사업의 포문을 열었다면, 이 회장은 중요한 고비 때마다 대규모 투자로 성장의 길을 열었다. 1987년 신임 회장에 오른 이 회장은 적자 탓에 기흥 공장 1~3라인 공사 중단을 건의하는 임원진에 오히려 화를 내며 ‘제2 창업’을 선언하며 적기투자를 단행했다.
“언제까지 그들의 기술 속국이어야 하겠습니까. 기술 식민지에서 벗어나는 일, 삼성이 나서야지요. 제 사재를 보태겠습니다.” 미국과 일본만 양산하던 D램 메모리반도체 사업은 이 회장의 제안으로 시작했다. 이 회장의 끊임없는 기술개발 주문과 대규모 투자로 삼성은 1992년 세계 최초로 64M D램 반도체 개발에 성공했다. 삼성 반도체가 메모리 강국 일본을 처음으로 추월하며 세계 1위로 올라서는 순간이었다. 이 회장은 2001년 일본 도시바로부터 낸드플래시 합작 개발을 제의받았으나 자력으로 키우기 위해 독자 사업을 추진했으며, 이후 ‘초격차 전략’을 내세워 반도체 시장을 선도했다. 2007년 세계 최초 64Gb 낸드 플래시 개발, 2010년 세계 최초 30나노급 4기가 D램 개발과 양산, 2012년 세계 최초 20나노급 4기가 D램 양산 등 성과는 “기술에 의해 풍요로운 디지털 사회를 실현할 수 있다”는 이 회장의 믿음에 의해 가능했다. 과감한 투자로 미래먹거리를 발굴한 이 회장의 승부사 기질로 삼성은 D램 부문 28년 연속, 낸드플래시 부문 17년 연속, PC 하드디스크의 부피를 획기적으로 줄인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부문 13년 연속 각각 세계 1위를 고수하고 있다.
| 이건희 회장이 2004년 반도체 30년 기념식에서 서명을 하고 있다.(사진=삼성) |
|
TV 사업 역시 이 회장 재임 기간 주력사업 중 하나로 성장했다. 이 회장은 TV 시장이 브라운관에서 평면으로 바뀔 것으로 내다보고 대형 액정패널(LCD) 투자를 단행하고, 반도체 기술자 500여명을 투입해 화질을 좌우하는 칩 개발에도 힘썼다. 개성과 디자인이 중요해질 것으로 내다보고 디자인팀은 이탈리아 밀라노 등으로 보냈다. 삼성은 1969년 흑백 TV를 생산한 이후 37년 만인 2006년 ‘보르도 TV’를 시작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일본 소니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고, 13년 연속 세계 TV 시장 1위를 지키고 있다. 삼성은 부품과 세트(완제품)에서 모두 글로벌 1위를 제패한 전무후무한 IT 전자 기업으로 우뚝 섰다.
모바일은 이 회장의 양보다 질 위주 경영인 ‘신경영’ 철학이 철저히 투영된 사업이다. 이 회장의 품질에 대한 뼈를 깎는 의지를 보여 준 대표적인 사례가 1995년 불량 무선전화기 ‘애니콜 화형식’이다. 품질 경영 DNA를 새긴 삼성의 휴대폰 사업은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2012년 갤럭시 시리즈로 애플을 따라잡고 스마트폰 시장 세계 1위를 달성했다. 이 회장의 경영 철학에 따라 삼성은 2016년 하반기 야심작으로 내놨던 갤럭시노트7이 배터리 발화 사건에서도 제품 전량 리콜과 환불을 결정, 발 빠른 조치와 후속대책으로 사태를 조기 종결했다.
완성차 사업은 실패…전장·배터리로 미래車 시대 초석 누구나 불가능하다고 했던 반도체 사업에서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던 이 회장은 미래 먹거리로 자동차 산업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자동차광’이던 이 회장의 꿈을 마침내 실현해 1995년 3월 삼성자동차를 설립하며 1998년 4월부터 첫차인 SM5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호기롭게 시작한 삼성의 자동차 사업은 곧 외환위기 여파로 흔들려 1998년 6월 말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눈물을 머금고 자동차 사업을 포기한 이 회장은 2조4500억원의 채무를 떠안은 삼성자동차를 구하기 위해 자신이 보유한 삼성생명 주식 350만주를 채권단에 증여했다. 결국 삼성자동차는 2000년 르노에 매각됐다. 이 회장의 젊은 시절부터의 꿈이자 필생의 도전이었던 완성차 사업은 ‘아픈 손가락’이 됐지만, 이후 삼성은 반도체 기반의 전장(전자장비)사업과 배터리 사업을 구축, 전기차를 비롯해 자율주행차 등 미래 자동차에서 이 회장의 못다 이룬 꿈을 완성하고 있다.
| [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