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서열 1위인 삼성그룹이 김용철 변호사의 비리의혹 폭로로 엄청난 홍역을 치르고 있는 가운데, 국내 굴지의 대기업인 한화와 대림이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법정싸움에 들어갔다.
재계는 삼성사태로 가뜩이나 기업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재벌간 치고받는 싸움이 벌어져 적지 않게 당황해 하고 있다. 재계 일각에선 기업들의 여수엑스포 유치 공로가 삼성사태에 이은 '한화-대림'간 싸움으로 빛이 바래게 됐다고 우려한다.
한화와 대림의 싸움은 양측이 각각 50%의 지분을 갖고 있는 여천 NCC(YNCC)의 인사권을 둘러싸고 불거졌다. 지난 9월 인사에서 대림쪽 직원들이 불이익을 당했다고 문제를 제기하고, 이에 한화측이 대응하는 과정에서 양측의 감정이 폭발했다.
급기야 YNCC의 등기이사로 최근 경영일선에 복귀한 이준용 대림산업(000210) 명예회장이 29일 기자회견까지 자청해 "YNCC의 한화측 경영진은 물론이고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까지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고 공개하기에 이르렀다.
이를 바라보는 재계의 입장은 착잡하다. 남의 장사에 끼어들지 않는 것이 재계의 '불문율'이라고 하지만, 지금은 재계 서열 1위인 삼성그룹의 비리의혹으로 재계 전반의 분위기가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 대기업 임원은 "이준용 회장(70)은 재계 원로급이고, 김승연 회장은 최근 '보복폭행 사건'으로 눈총을 받지 않았냐"며 "다른 기업도 아니고, 이들 두 대기업이 싸우니, 그림이 그리 썩 좋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재계 일각에선 삼성사태와 '한화-대림' 재벌간 싸움이 자칫 '반기업 정서'를 부추기지나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또 이들 사건이 여수엑스포를 유치하는데 크게 기여한 기업들의 노력 마저 허사로 만들지나 않을까 우려한다.
물론 재벌도 재벌 나름이다. 최근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의식해 행동이나 말 한마디에도 신경을 쓰는 곳이 많다. 그중 현대차그룹은 좋은 예다.
현대차쪽에 이유를 묻자 묵묵히 많은 일을 한 김재철 유치위원장(동원그룹 회장)을 비롯해 많은 기업인들이 열심히 뛰었는데, 어떻게 현대차만 스폿 라이트를 받을 수 있겠냐는 답변이 돌아왔다.
일각에선 현대차그룹이 곤욕을 치르고 있는 삼성그룹을 배려한 측면도 있다고 한다. 초상집 앞에서 잔치를 벌일 수 없었다는 것이다. 현대차그룹은 삼성그룹에 이어 재계 서열 2위이지만, 정몽구 회장(70)이 삼성 이건희 회장(66)보다 연장자이기 때문에 정 회장이 이 회장을 배려했을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기업들이 비지니스하는 과정에선 늘 송사(訟事)가 있기 마련이지만, 요즘처럼 어수선할 때는 재계 스스로 몸을 낮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관련기사 ◀
☞한화 "대림의 김승연 회장 고소, 납득못해"
☞이준용 회장 "한화에 명예훼손 및 손해배상 소송"(상보)
☞대림 이준용 회장 "여천NCC 해결위해 나설 뜻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