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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명철 기자] “영업·개발·기술지원이라는 3대 조직을 마련해 벤처기업이 장기 구도로 갈 수 있도록 했다. 이제는 성공적인 인수합병(M&A)을 통해 빅데이터 전문 회사로 자리 잡을 계획이다.”
조종암 엑셈(205100) 대표는 벤처기업의 지속 성장을 위한 조직 관리의 중요성에 대해 수차례 강조했다. 책으로 둘러싸인 집무실에 있는 조 대표의 모습이 낯설지 않은 이유는 엑셈이 책 쓰는 소프트웨어 기업으로도 유명하기 때문이다. 그가 직접 쓴 ‘오라클 SQL 튜닝’을 비롯해 ‘엑셈 기술백서’ 등 15권 이상의 책들이 이 회사에서 나왔다. 일부 서적들은 소프트웨어 기술 강의 교재로도 사용된다.
“벤처기업은 언젠가는 캐즘(새 제품이 대중화되기 전 일시 수요가 정체되는 현상을 일컫는 용어)을 만나게 되는데 이를 극복해야 한다”는 그는 제프리 무어의 ‘캐즘 마케팅’을 읽고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회사가 나아가야 할 길을 깨우쳤다. 이후 관심 분야는 경영 일반, 인문학으로 번졌고 “결국 경영은 사람이며 조직 관리의 문제”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코스닥 상장 후 이제는 빅데이터 관련 거대 조직의 운영 묘안 짜내기에 열심인 그를 서울 강서구 염창동 본사에서 만났다.
컴퓨터 박사 된 외교학도, 엔지니어의 길로
업계에서는 엔지니어 출신 대표로서 유명한 조 대표지만 사실 그는 서울대 외교학과를 나온 소위 ‘문과생’이었다. 컴퓨터 보급도 제대로 안 이뤄지던 시절 엔지니어의 길로 접어든 계기가 궁금했다. “PC가 처음 나왔을 무렵 제대를 했는데 공부해보니 이 안에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과 사무실에 한 대 정도만 있던 시절에 PC를 직접 사서 만지다보니 프로그래밍도 하게 됐다”고 그는 술회했다. “사회대 내에서도 정치학쪽 보다는 상대적으로 논리적인 학문인 경제학을 주로 들었다”는 그는 이때 계량경제학 수업을 통해 회계분석을 하게 됐고 SPSS 통계 프로그램까지 접할 수 있게 됐다. 컴퓨터와 가까워지면서 프로그램까지 다루는 ‘컴퓨터 도사’가 된 것이다. 이때 경험은 졸업 후 진로 결정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더 깊은 컴퓨터 분야를 공부하기로 마음먹은 그는 포항공대 정보통신대학원에 입학해 소프트웨어 공학을 연구했다. 이후 포항제철 정보시스템부 개발자로 입사해 정식 엔지니어로서 사회에 입문하게 됐다. 배움에 대한 갈망이 여전했던 그는 포스데이타 컨설팅사업부에서 컨설턴트로 근무하면서 오라클과 연을 맺게 된다.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당시 유일하게 체계적으로 정리가 잘 된 곳이라는 판단에 더 많은 학습을 위해 또 다시 적을 옮긴 것이다.
이후 4년여간 오라클 데이터베이스(DB) 기술자문팀에서 일하던 당시를 그는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라고 회상했다. 그는 “엔지니어는 아이들과 같아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누군가로부터 인정받는 것이 최고”라며 “계속 새로운 문제에 부딪히면서도 악성 중의 악성인 현장에 투입시켜달라고 바라면서 치열하게 지냈고 소프트웨어 아이디어도 많이 생겨났다”고 전했다.
엔지니어로서 기반을 마련한 후 2000년께 오라클 내 후배 3명과 함께 컨설팅 업체를 차렸다. “처음에는 구체적인 사업에 대한 확신이 없었고 컨설팅 단가가 높아 이것만으로도 할 만하다고 생각했다”던 그는 성능관리 솔루션 제품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오르자 제품을 만들어보자고 동료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반대도 있었지만 결국 실험을 통해 제품을 만들게 됐고 이는 현재 회사 성능관리 시스템 제품인 ‘맥스게이지’의 모태가 됐다.
4명이서 시작한 회사가 20~30명이 되고 50여명으로 증가하기 시작하던 무렵, 조 대표는 결단이 필요한 때라고 판단했다. “직원들이 20~30명일 때는 각자 영업을 하다가도 개발도 하던 일당백의 시기였지만 이제는 조직이 커지면서 분리가 일어나기 때문에 향후 회사 목표를 어디로 잡아야할지 결정해야 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벤처기업의 성장 정체기인 ‘캐즘’에 도달했기 때문에 앞으로 회사가 나아가야할 변화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그는 장기 소프트웨어 전문기업으로서 면모를 갖추기 위해 회사 내 3대 조직으로 영업과 개발, 기술지원 부문을 확립할 것을 목표로 했다. 이때 기술지원 조직 분리에 따른 컨설팅 분야의 포함 여부가 고민으로 다가왔다. 매출 확대를 위해 영업 우위 전략을 마련하는 단계에서 기술지원 조직이 기술 컨설팅 성격보다는 고객 지원의 역할이 커지고 이는 해당 근무자들의 근무 의욕 저하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직원은 제품이 기반을 둔 기술도 갖고 싶어 하지만 회사는 단순한 툴 지원도 필요한 상황”이라며 “컨설팅 직원들이 컨설팅만을 고집한다면 정리하는 쪽으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소프트웨어 기업으로서 기술자에게는 제품 지원이 1순위”라는 판단을 믿고 회사를 나가는 컨설팅 담당자들에게는 일거리를 주되 품지 않기로 한 것이다. 대신 기술자로서의 동기부여를 제공하기 위해 기술의 지식화를 추진했다. 회사 근간이 되는 기술을 깊이 있게 파고 그것과 관련된 기술로 외연을 확장하는 방식을 추구했다.
그는 “벤처기업이 성장하느냐 마느냐는 조직 구성에 따른 고비를 겪어야 하는데 이때 엉거주춤하다간 기회를 잃어버린다”며 “(조직 정비)결정 이후 일부 직원들이 나가기도 했지만 남은 직원들은 제품 지원에 집중하게 되면서 제품은 더욱 좋아지게 됐다”고 강조했다. 코스닥 상장을 통해 또 한번 변화 계기를 마련했다. 조 대표는 “상장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갈 길이 멀었기 때문에 한눈 팔지 말고 더 집중을 해야 했던 상황”이라며 “지금까지 잘해오던 분야에 집중하면서 수익에 기여하는 것이 더 나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상장을 하고 난 후 투자자들이 참여하면서 달라진 위상과 함께 책임감 또한 늘어났음을 통감했다.
“내가 잘하는 것으로 기술 성숙도를 높이는 데는 자신이 있지만 이 노력이 수익화가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물음표가 매겨졌다”는 그는 “결국 우리 사업과 연관성이 있는 큰 시장에 발을 담그자고 결정하고 빅데이터에 진출키로 했다”고 설명했다. 사물인터넷(IoT)과 클라우드의 발달로 막대한 빅데이터가 발생하는데 따른 처리기술의 중요성도 감안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6월 스팩과의 합병 상장 후 신시웨이와 클라우다인을 인수한데 이어 선재소프트·아임클라우드 지분 일부를 사들이며 주요 주주로 올라섰다.
“빅데이터 시장 선도… 중추 역할 맡을 것”
“빅데이터 시장에서 다양한 솔루션들이 연합해 국내 시장에서 큰 플레이어가 되겠다”는 그는 엑셈을 주축으로 한 일련의 인수·투자를 통해 일명 ‘엑셈 얼라이언스(연합군)’을 구성했다. “지금까지 인수나 투자한 회사들은 사장들이 최고기술책임자(CTO)나 다름없는 연구자 집단”이라며 “신사업을 위한 구성요건은 갖췄고 이제는 가시화된 숫자를 만들어낼 때”라고 다짐했다.
중국 합작법인 설립은 가장 염두에 두고 추진·검토 중인 사항이다. 조 대표는 한국에서 수행하던 사업방식을 중국에도 적용해 장기적으로는 상하이나 홍콩 주식시장에 합작법인을 상장시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빅데이터를 활용한 다양한 산업과의 융복합도 관심사다. “융합적이고 꾸준히 확장하는 특성의 빅데이터는 인공지능이나 IT의 변화에 있어서 코어 엔진에 해당한다”는 그는 “향후 자율주행차나 드론, 로봇 등에 적용 가능한 처리 엔진 형태의 어플라이언스(기기) 제작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기업 소프트웨어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업체들을 넘어 향후 최고 수준의 가치를 받겠다는 포부도 내비쳤다. 그는 “안랩이나 한글과컴퓨터, 더존비즈온 등을 제외하고는 허리 역할을 할 만한 기업 소프트웨어 업체가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성장 가능성을 인정받아 업계의 허리 군을 형성하고 난 이후에는 시가총액 1조원 기업까지도 노려볼 것”이라고 밝혔다.
조종암 엑셈 대표는
1965년 경북 안동 출신으로 1984년 강릉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서울대 외교학과를 나와 1992년 포항공대 정보통신대학원에 입학했다. 1994년 공학 석사 취득 후 1996년까지 포항제철 정보시스템부 개발자, 포스데이타 컨설팅사업부 시니어 컨설턴트 등을 거쳤다. 이후 2000년까지 한국오라클 DB기술자문팀에서 지냈으며 2000년 컨설팅 업체인 에스텍을 설립했다가 2001년 현재 엑셈을 차렸다. ‘오라클 SQL 튜닝’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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