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명 죽음 내몬 이스라엘 호출기, 어떻게 헤즈볼라 속였나

플라스틱 폭약으로 엑스레이 통과
“빠른 방전 눈치챘지만 보안 연결 못해”
저가 판매로 구매 유도…가짜 마케팅도
  • 등록 2024-10-17 오전 10:53:38

    수정 2024-10-17 오전 10:53:38

[이데일리 김윤지 기자] 지난달 17일 레바논 전역에서 동시 폭발한 이스라엘 호출기가 플라스틱 기폭 장치 등으로 제작돼 엑스레이 검사 등을 통과했다고 16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배터리 팩 안에 폭발 물질 숨겨

로이터가 입수한 호출기 사진 등에 따르면 문제의 호출기 배터리 팩 내부에는 얇고 네모난 6g의 백색 펜타에리트리톨 테트라니트레이트(PETN) 플라스틱 폭약, 기폭 장치 역할을 하는 가연성 물질이 포함됐다. 이들은 2개의 배터리 셀 사이에 끼워져 검은색 플라스틱 커버 안에 삽입돼 겉으로는 일반적인 표준 리튬 이온 배터리 팩처럼 보였다.

이는 금속 실린더를 사용하는 소형 기폭 장치와는 다른 특이한 조립 방식이라고 로이터는 전했다.

지난달 18일(현지시간) 레바논 남부 지역에서 발생한 폭발 사고 현장.(사진=AFP)
또한 문제의 호출기는 플라스틱 폭약 등 금속 부품을 전혀 사용하지 않아 엑스레이도 무사히 통과했다. 헤즈볼라는 지난 2월 해당 호출기를 수령한 후 공항 보안 탐색기를 이용해 폭발물의 존재를 확인했으나 당시 의심스러운 사항은 보고되지 않았다.

로이터는 전문가를 인용해 문제의 호출기가 배터리 팩 내부에서 스파크를 생성해 기폭 물질에 불을 붙이고 PETN 판을 폭발시키도록 설계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문제는 폭약과 포장이 전체 부피의 약 3분의 1을 차지해 해당 호출기의 배터리가 빨리 방전된다는 점이었다. 같은 무게의 배터리 팩과 비교하면 문제의 호출기 배터리 팩의 사용 시간은 4분의 1 수준이었다. 헤즈볼라는 이를 눈치챘지만 보안 문제로 연결하지 못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가짜 ‘마케팅’으로 헤즈볼라 속여

해당 호출기는 설계, 제조, 공급 모두 이스라엘 해외 정보기관인 모사드가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은 해당 호출기가 대만 브랜드인 골드 아폴로의 제품인 것처럼 속여 제3의 인물을 통해 헤즈볼라에 호출기를 대량 구매를 제안했다.

이스라엘 대외첩보기관 모사드의 데이비드 바르네아 국장.(사진=AFP)
해당 호출기나 배터리 팩은 철저하게 헤즈볼라를 겨냥해 설계됐기 때문에 헤즈볼라가 구매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이를 눈치챌 위험이 있었다. 이스라엘은 가짜 웹사이트, 거짓 상품 판매글이나 게시물로 구매 절차가 엄격한 헤즈볼라를 속였다. 전직 이스라엘 정보 요원은 “물건을 철저히 점검하는 헤즈볼라가 구매에 앞서 제품을 조사할 때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아무것도 찾을 수 없으면 문제가 된다”고 말했다.

헤즈볼라는 이스라엘 정보기관의 도청 탓에 올해 초 내부 통신 수단을 휴대전화에서 호출기로 전환했다. 제3의 인물은 헤즈볼라가 해당 호출기를 선택하도록 매우 저렴한 가격을 제시하며 구매를 유도했다. 결국 헤즈볼라 지도부는 호출기 5000여개를 구입해 올해 초 전투원과 요원들에게 나눠준 것으로 전해진다.

이렇게 보급된 수천 개의 호출기는 지난달 17일 레바논 전역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폭발했다. 로이터는 대부분 장치가 메시지 수신 알림을 알린 후 폭발했으며, 피해자 다수가 눈, 손가락, 복부를 다쳤다고 전했다.

다음날 헤즈볼라의 무전기도 이처럼 동시다발적으로 폭발해 총 39명이 사망하고 3400명 이상이 부상 당했다. 헤즈볼라 조직원 뿐만 아니라 민간인 피해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은 이와 관련해 인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이후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이 모사드의 “매우 인상적인 성과”를 칭찬하면서 이스라엘이 배후임을 암묵적으로 인정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미 당국은 이 작전을 사전에 통보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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