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세계 경기둔화와 유가 급락에 조선업계 업황이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대우조선에 수 조원대 자금을 지원하는 것은 부실 기업의 ‘옥석가리기’가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는 방증이란 지적이 제기된다. 특히 특정기업에 4조~5조원씩 지원하는 것은 역대 최대 규모다. 업황이 더 악화돼 자금 부족이 지속된다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기업가치 제대로 따졌나..`구조조정 원칙`에 의문 제기
대우조선해양은 올해 3분기 누적(1~9월) 영업적자가 4조 3003억원, 당기순손실이 3조 7881억원을 기록했다. 올해 전체로 보면 4조 8000억원 적자를 기록할 전망이다. 그로 인해 연말까지 자금이 없을 경우 부채비율은 4000%로 높아질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6월 말 776%에 비해 다섯 배 가량 상승하는 것이다. 사실상 선박을 수주하고 이를 만들어 자금을 회수하는 등 영업활동이 불가능한 수준이 되는 셈이다.
산은은 일시에 대규모 자금을 지원하면 마중물 역할을 해 대우조선이 정상적인 영업활동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도 그럴것이 산은은 1999년 대우그룹이 공중분해되면서 출자 전환 및 워크아웃 등을 통해 대우조선해양의 대주주가 됐다. 2001년엔 대우 계열사 중 가장 빨리 워크아웃을 졸업할 정도로 성과를 냈고, 조선업이 호황기를 맞으면서 산은은 대우조선 출자전환의 수혜자가 된 듯한 기분도 맛봤다.
그러나 국책은행인 산은이 정상 기업인 대우조선을 15년간 넘게 기형적으로 보유한 대가는 컸다. ‘주인 없는 회사’에 관리가 소홀해졌고 시시때때로 낙하산 논란이 반복됐다. 그러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여겨졌던 해양플랜트 사업이 좌초되고 조선업황이 다시 악화되자 수 조원이 넘는 자금을 또 다시 지원해주게 된 상황이다.
한국수출입은행은 삼성중공업,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3대 조선사 중 유독 대우조선해양에 대해서만 신용등급을 일정수준(P4)이하로 떨어뜨려 지난 7월부터 선수금환급보증(RG) 발급을 까다롭게 적용하고 있다. 수은 내규에 따르면 신용등급이 P4이하로 떨어지면 선수금을 공정률에 따라 지급하는 방식으로 선수금 관리가 강화된다. 수은 관계자는 “삼성중공업, 현대중공업은 대우조선에 비해 자기자본이나 기업 규모로 볼 때 재무상황이 급격히 악화되지 않았다”며 “대우조선은 조선쪽에만 특화돼있는 반면 현대중공업은 조선 외에 정유 등에서도 매출이 이뤄지고 있어 매출 포트폴리오가 다양화돼 있다”고 밝혔다.
꼬리표는 `정상기업`..좌충우돌 구조조정
당초 대우조선에 대한 자금 지원 방안은 22일 청와대 경제금융대책회의, 서별관 회의에서 논의된 후 23일 산은이 이사회에서 의결, 발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정상화 방안은 서별관 회의에서 제동이 걸렸다. 수 조원대 자금을 지원하기 앞서 대우조선 사측과 노조가 임금 동결, 파업 금지 등에 동의하는 노사 확약서를 채권단에 제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기 때문이다. 자율협약, 워크아웃 등 구조조정을 받는 기업이었으면 자금을 지원하기 앞서 노사 확약서를 받는 것은 필수이지만, 대우조선에 대한 자금 지원에선 이런 과정이 뒤죽박죽 얽히게 됐다.
수주산업에 대한 구조조정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대우조선처럼) 수주산업은 워크아웃을 받는 순간 그 기업이 죽게 된다”며 “수주산업은 구조조정을 하되 구조조정하는 줄 모르게 하는 게 관건”이라고 말했다.
대우조선 부실에 대한 책임 소재는 분명히 가려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윤석헌 숭실대 교수는 “대우조선의 부실규모가 어쩌다가 이렇게 커졌는지 그 과정에서 산은과 금융위원회는 뭘 했는지 분명하게 설명해야 하고, 반드시 살려야 하는 이유와 살릴 경우 어떤 결과가 나올지도 밝혀야 한다”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