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이 틀어쥔 현대상선 지분..실타래 푸는 단서?

현대건설, 현대상선 지분 8.3% 보유..현대그룹 경영권 키(key)
  • 등록 2010-07-06 오후 4:47:28

    수정 2010-07-06 오후 5:34:51

[이데일리 이진우 기자] 재무구조개선약정(MOU) 문제를 놓고 현대그룹과 채권단의 날 선 대립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현대건설이 보유한 현대상선 지분(8.3%)이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도 있다는 분석이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그 배경에는 현대건설 인수를 목표로 내건 현대그룹이 실제로는 현대건설(000720) 자체보다 현대건설이 가진 현대상선 지분 8.3%에 더 눈독을 들이고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깔려있다.

현대그룹 입장에서는 현대건설이 가진 현대상선(011200) 지분 8.3%만 가져올 수 있다면 현대건설을 놓치더라도 그룹 경영권까지 흔들리게 되는 최악의 상황은 면할 수 있다는 계산을 할 수 있다는 것. 이런 그림을 만들어 줄 경우 현대그룹이 현대건설 인수를 포기하고 MOU에 서명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현대건설 매각 이슈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범현대가는 현대건설을 인수하면 좋겠다는 정도지만 현대그룹은 현대건설을 놓칠 경우 그룹 경영권에 문제가 생길 수 있어 더 절실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재무개선약정을 놓고 벼랑끝 싸움을 펼치고 있는 이면에는 최악의 경우라도 그룹 경영권은 지켜야 한다는 압박감이 깔려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 1석2조의 현대건설 인수 효과

현대건설이 현대그룹(회장 현정은)과 범현대가(현대차· 현대중공업·KCC) 양쪽 모두의 타깃이 된 표면적인 이유는 인수전에서 이기는 쪽이 옛 현대그룹의 정통성을 이어받게 된다는 논리 때문이다.

그러나 옛 현대그룹의 정통성 계승 논란을 한꺼풀 벗기고 들어가보면 현대그룹을 정씨 일가만의 소유로 남기느냐 마느냐 하는 순혈(純血) 경쟁이 더 본질에 더 가깝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즉 범현대가는 현대건설이 가진 현대상선 지분(8.3%)를 통해 현대상선을 중심으로 한 현대그룹을 정씨 일가의 수중으로 되찾아오겠다는 계산을 하고 있는 반면, 이에 맞선 현대그룹도 어떻게든 현대건설을 인수해 그룹 경영권과 정통성을 동시에 확보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는 중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현대건설이 보유한 현대상선 지분(8.3%)은 이런 캐스팅 보트 역할을 충분히 할만한 지분이다.
 
현재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 일가가 보유한 현대상선 지분은 우호지분을 포함해 약 44%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현대중공업과 KCC 등 범 현대가의 지분율은 현재 30% 정도다.
 
만약 현대건설을 범현대가에서 인수할 경우 범현대가의 현대상선 지분율은 39%로 올라간다. 약 17%의 기타 잔여지분을 공개매수 등으로 범현대가에서 인수하려 든다면 필요한 돈은 많아야 1조원 정도다. 현금 동원력이 풍부한 범현대가의 입장에서 보면 생각해볼만한 그림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현대그룹 입장에서는 현대건설을 인수하려고 해도 큰 돈이 필요하고 현대건설을 놓치더라도 그 후 경영권 방어를 위해서는 적지 않은 자금이 필요하다"면서 그래서 만약 채권단과의 재무약정으로 외부 자금 조달 통로가 막힐 경우 문제가 커진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현대건설 넘겨주고 현대상선 지분 가져오는 빅딜(?)

이런 역학구도는 뒤집어 생각하면 현대그룹의 정통성과 현대상선의 경영권을 범현대가와 현 회장 측이 공평하게 나눠갖는 이른바 `빅딜`이 가능하게 만드는 대목이기도 하다.
현대건설을 범현대가에서 인수하는 대신 현대건설이 가진 현대상선 지분 8.3%(약 4천억원어치)는 따로 떼어 현정은 회장 쪽으로 넘기는 구도다.

자금력이 부족한 현대엘리베이터 보다는 현대상선이 자사주 형식으로 매입하는 안이 더 현실적이지만, 필요할 경우 채권단이 현대엘리베이터에 자금을 지원하고 현대엘리베이터가 현대상선 지분을 사들여 현대상선의 단일 최대주주로 올라가는 그림도 가능하다.

이는 현대건설의 채권단이 현대건설의 현대상선 지분을 먼저 매각하는 분할매각을 선택할 경우에만 가능한 구도다. 문제는 분할매각과 패키지 매각 가운데 어느쪽이 공적자금등 채권회수율을 높이는 방안인지 예측하기 힘들어 채권단이 분할 매각을 선뜻 선택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게 걸림돌이다.

일각에서는 현대그룹과 재무구조개선약정을 맺기 원하는 채권단이 범현대가와 현대그룹간의 중재를 해주는 시나리오도 내놓는다.
 
현대중공업이나 KCC가 보유한 현대상선 지분 가운데 8% 가량을 먼저 현대그룹에 넘기고 범현대가에서 현대건설을 통째로 인수하는 방안이다. 범현대일가는 피를 흘리지 않고 현대건설을 싸게 인수할 수 있게 되고 채권단 역시 현대그룹의 무모한 인수 시도를 막고 재무약정 체결도 유도할 수 있다는 잇점이 있다. 다만 이로 인해 현대건설 매각 가격이 낮아질 경우 불똥이 금융당국으로 튈 수도 있다는 점이 변수이긴 하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재무약정을 거부하는 현대그룹의 무릎을 꿇릴 수 있는 수단이 마땅치 않은 만큼 현대그룹이 좋아할만한 사탕을 준비하는 것도 필요하다"면서 "현대건설 인수를 막지 않겠다는 제안보다는 현대상선 지분 확보를 도와주겠다는 보다 현실적인 제안이 더 잘 먹힐 수 있다"고 내다봤다.
  
▲ 현대상선 지분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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