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트립 in 정기영 기자] 코로나 펜데믹 시대, 여행의 판도가 바뀌고 있다. 초창기에는 다들 몸을 사리며 마스크 쓰기가 일상화가 되어 안착한 요즘 갑갑한 실내보다 야외로 다니는 여행지가 인기 중이다. 서울 근교 적당한 거리두기를 할 수 있는 여행지라면 경기도 양평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양평과 남양주의 가장 멋진 여행지라면 운길산 수종사가 아닐까. 이제 막 운전 면허증을 딴 초보 운전자가 진땀 꽤나 흘리며 올라가는 구불구불한 임도는 한 번 다녀오면 운전 솜씨가 는다고 할 정도로 길이 어렵다. 불이문을 지나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면 수종사에 들어서면 순간 당황스럽다. 명성에 비해 소박하고 작은 규모는 이곳이 왜 유명한지를 짐작하기조차 어렵다. 하지만 수종사 경내의 무료 찻집인 삼정헌 옆에 서서 보이는 풍경은 이 모든 의문이 풀린다. 조카 단종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세조와 관련된 절집의 창건 설화와 함께 5백년 된 은행나무, 석탑 등이 이곳이 오랜 절집인 것을 의미하지만 지나온 시간에 대한 의미는 없다. 산령각 앞에서 보는 풍광은 이곳 절집의 위엄이 제대로 느껴지는 핫스팟이다. 조선시대 문장가 서거정이 ‘동방 절집 중 제일의 풍경’이라고 했을 정도로 북한강의 빼어난 경치를 볼 수 있으니 오르는 길이 힘들다 한들 이 풍경은 포기 못한다.
두물머리는 말이 필요 없는 여행지이다. 북한강과 남한강의 두 물이 만나 한강이 되기까지, 오랜 여정의 물길이 합쳐지는 곳이다. 사진을 좀 찍는다는 사람들에게는 단골 출사지이며, 이제 시작하는 연인들에게는 사랑의 첫 페이지를, 친구 혹은 가족과 함께 한 사람들에게는 기억 속 한 페이지를 만드는 곳이다. 몇 년 전에 제작된 두물머리 액자는 늘 인기 있는 곳이라 항상 줄을 서야 한다. 두물머리를 배경으로 사진 액자의 앵글 속에서 사진을 찍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액자 옆에는 두물머리 나루터다. 한 때는 남한강 최상류의 정선에서 출발해 종착지인 마포 나루터까지의 한강 물길의 중간 정박지 역할을 했던 곳으로 육로가 발달하기 전에는 매우 번창했던 곳이다. 이제는 시간 속에 그 흔적조차 사라졌던 것을 지난 2017년 양평군에서 나루터 비석을 세웠다. 이즈음의 두물머리에는 연꽃이 한창으로 눈이 즐거워지며, 연꽃으로 만든 연잎 핫도그는 이곳의 명물 먹거리이다.
북한강변을 따라 가는 드라이브 여행은 계획하지 않아도 자연스럽다. 강을 가운데 두고 한쪽은 경기도 남양주시, 다른 한쪽은 양평군으로 나뉘면서 보이는 풍경도 다르다. 날씨가 맑은 날이면 운길산 아래 8부 능선에 있는 수종사도 뚜렷하게 보이고, 강 건너 물의 정원에 핀 꽃들도 아지랑이 피듯 한다. 강변에서는 커피집을 빼놓으면 팥소가 빠진 찐빵 같은 여행이 될 것이다. 강변 풍경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커피집들은 규모가 제법 크며 야외 테라스에서 커피 한잔과 함께하는 시원한 바람은 덤이다. 하우스 베이커리, 느린정원, 테라로사, 하버 커피 등 개성 있는 독특함이 쟁쟁한 커피집들이 강변을 따라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있어 이동하다가 마음에 드는 곳을 선택하기에도 괜찮다. 실내의 답답함 보다 실외의 공기가 그리운 탓일까. 식사 후 후식 시간 즈음에 가면 자리가 없어 되돌아 나오게 되는데 남들이 가지 않는 시간에 찾는 게 답이다.
숙소를 찾는다면 마스크를 벗을 수 있는 곳을 찾게 된다. 양평 피오레 펜션은 12가지 컬러별 여행 스토리를 담을 수 있는 곳으로 이색적인 인테리어가 눈에 띈다. 날이 무더워진 요즈음은 객실에 있기보다 워터 슬라이드가 있는 야외 풀장이 인기이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대세인 요즘, 전 객실 개별 테라스와 함께 개별 바비큐장으로 안전하게 즐길 수 있으니 금상첨화. 펜션 옆에는 조그마한 계곡도 있어 여름 계곡의 재미도 누릴 수 있다. 피오레 펜션에 정착해 가족이 된 청둥오리 가족들의 귀여운 모습을 보는 것 또한 이곳만의 자랑이다. 피오레 펜션은 시원한 그늘 아래 커피를 마시며, 신나게 물놀이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이 밀려온다. 사랑하는 연인, 단란한 가족들이 오붓한 추억을 만들고, 장미 향이 묻어나는 야외 정원을 산책하며, 흔들 그네에 앉아 새소리를 듣는다.
양평은 서울근교 지리적 위치로 다녀오기 좋은 여행지이다. 쉽게 떠오르는 곳, 예쁜 펜션과 루프탑 카페, 맛있는 맛 집들이 속속들이 등장해 항상 만족감이 크다. 한강을 이루는 북한강과 남한강의 강줄기와 높지 않은 산군들이 보여주는 능선의 풍경을 고루고루 맛볼 수 있어 늘 풍요롭다. 언제부터인가 일상에서 아무렇지 않게 누렸던 것들을 그리워하는 시절이 된 요즘. 아무렇지 않았던 것들을 향해 떠날 수 있는 여행지가 있다는 것이 사뭇 고마워지는 날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