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발 위기, 국내기업에 시한폭탄? 찻잔 속 태풍?

유럽발 금융위기에 일부 기업 수출에 큰 차질
업종 따라 "위기가 오히려 기회"라는 분석도
장기화할 경우 국내 경기 회복에도 악영향
  • 등록 2010-05-24 오후 3:44:52

    수정 2010-05-24 오후 4:00:54

[이데일리 이승형 기자] ‘시한폭탄’이 될 것인가,  ‘찻잔 속 태풍’이 될 것인가.

최근 국내외 금융시장을 요동치게 만든 유럽발 위기를 놓고 국내 기업들 사이에서 영향분석이 엇갈리고 있다. 
 
유럽 지역 수출 비중이 높은 일부 기업들은 이미 수출에 큰 차질을 빚고 있는 반면 일부 업계에서는 이번 위기가 오히려 기회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업들은 유럽재정위기 여파가 예상보다 장기화할 경우 회복세로 돌아선 국내 경제에 큰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 자동차 업계에서는 "위기가 오히려 기회"

국내 자동차 업계는 오히려 기회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입장이다.

특히 현대차(005380)기아차(000270)의 경우 경제위기로 자동차 수요가 줄어들 것이 예상되지만 유럽시장에 소형차 중심의 라인업을 선보이고 있는 터라 큰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분위기다.

아울러 현재 유럽에 투입하고 있는 모델의 절반가량만 국내에서 생산, 수출하고 있는데다 나머지 물량은 유럽 현지에서 생산하고 있기 때문에 이같은 충격에서 어느정도 자유롭다는 주장이다. 

유럽발 경제위기에 자신감을 보이는 이유는 또 하나의 큰 이유는 유럽 현지에서 현대차와 기아차에 대한 인식이 '연비가 좋은 차'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들어 현대·기아차의 유럽 판매실적은 계속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경기가 나빠지면 연비가 좋은 소형차를 찾는 현상에 기대를 걸 만하다는 분석이다.

현대·기아차는 지난달 전체 판매순위에서 9위를 기록하며 두달 연속 도요타를 제치는 등 현지 전략형 모델이 시장에서 큰 호평을 받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유럽발 경제위기는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가 관건"이라며 "단기적인 피해는 미미할지 모르나 현 상황이 향후에도 계속 지속된다면 자동차 업계도 이런 리스크에서 자유롭지는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 전자업계, “직접적 영향 없지만 예의 주시”

전자·반도체 업계는 아직까지 유럽재정위기에 따른 직격탄은 맞지 않았지만 간접적인 영향권에 놓여있다고 보고 사태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삼성전자(005930)의 경우 유럽시장의 소비심리 위축에 초점을 맞춘 채 실시간으로 상황을 체크하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삼성전자의 유럽 매출 비중은 작년말 기준으로 전체 매출의 26% 수준”이라며 “소비심리가 위축되면 당연히 매출이 줄어들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사태 진행 상황을 면밀히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유럽지역 사업비중이 약 20%인 LG전자(066570)도 현재까지는 직접적인 손실 등 영향이 없으나, 이번 이슈가 장기화되면 금융 분야뿐만 아니라 실물경기에도 영향을 줄 수 있어 각국 법인별로 현지 경기동향을 면밀히 예의주시하고 있다.

유럽 지역 매출이 전체 매출의 10% 수준인 하이닉스반도체(000660)도 유럽재정위기의 장기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대책 마련에 고심중이다.

특히 PC 등에 대한 수요가 위축될 경우 반도체 공급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어 시장 동향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과거 유로화 가치가 하락할 때마다 유럽 PC 출하량은 감소했던 전례가 있다. 유로화 가치의 급락으로 환손실을 입는 글로벌 PC 업체들이 유럽 지역 PC 제품 생산 및 주문을 연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송명섭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유럽이 전체 PC 출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9%로 유럽재정위기는 반도체 업황에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을 줄 것”이라고 진단했다.

송 연구원은 “올해 전세계 PC 출하량 성장률 전망치를 20%로 잡고 있었으나 유럽발 영향 등을 감안해 기존 전망채 대비 5%, 10%, 15% 성장률 감소를 가정해보면 성장률은 각각 18.3%, 16.4%, 14.6%로 하락하게 된다”고 전망했다.

◇ “직격탄은 중소기업들이 먼저 맞았다”

한편 일부 중소기업들은 유럽발 위기 가능성의 악영향을 직접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신발 원자재 관련 제조 중소업체인 경기도의 모 회사는 최근 유럽 바이어들이 납품단가를 낮추어 달라는 요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남유럽 재정위기가 다시 불거진 5월초 이후 거래하던 유럽 바이어들이 납품단가 10~20% 인하를 요구하고 나섰다”며 “현재 거래처 대부분이 유럽에 있는 실정이어서 마땅한 회피수단도 없다”고 말했다.

이어 “결제 역시 유로화로 지급하는 실정이어서 유로화 약세에 따라 수익성까지 악화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유럽재정위기 여파가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들을 먼저 몰아치고 있는 형국이다. 중소업체들을 중심으로 수출계약 취소나 수출대금 입금 지연 등의 악영향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24일 발표한 '유럽재정위기가 국내경제에 미치는 영향' 조사(500개 기업 대상)에 따르면 위기 장기화 전망에 따라 기업들 10곳 중 7곳은 피해를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응답 기업의 34.7%는 '재정위기가 1년 이상 지속될 것', 31.0%는 '6개월 지속될 것'이라고 답해 약 66%의 기업이 위기가 장기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동근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은 “이번 위기가 유럽 국가들의 재정문제에서 시작돼 환율 등 금융시장 불안, 유럽지역 소비위축 등 전방위적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라며 “기업차원에서는 대응방안을 마련하기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유럽재정위기 장기화에 대비한 정부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출구전략'에 대한 논의가 일고 있으나 유럽재정위기의 진행상황을 지켜보면서 금리 인상 등을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것"이라며 "무엇보다 환율안정이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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