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오에 벤조피렌까지'…천연물의약품 원료관리 비상

백수오 함유 의약품 16개 중 4개 이엽우피소 사용
이엽우피소 규격 기준 없어 무방비로 가짜 원료 노출
식약처, 벤조피렌 관리기준 강화 움직임에 제약사들 '술렁'
업계 "안전관리 책임 떠 넘겨" 비판
  • 등록 2015-05-28 오전 11:27:23

    수정 2015-05-28 오전 11:27:23

[이데일리 천승현 기자] 제약사들이 천연물의약품의 원료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가짜 백수오 파동’처럼 품질관리기준이 설정되지 않은 원료에서 안전성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여기에 보건당국이 발암물질 ‘벤조피렌’의 관리 기준 강화 움직임을 보이면서 기업들에 안전관리 책임을 떠 넘긴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백수오 의약품 16개 중 4개 이엽우피소 사용..규격 기준 없어 무방비 노출

28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백수오를 사용한 제품에 대한 전수조사 결과 의약품 4종에서 이엽우피소나 하수오가 원료로 사용된 것으로 드러났다. 국내 허가를 받은 의약품 중 백수오 원료가 사용된 제품은 총 16개다. 4개 품목 중 1개는 가짜 원료가 들어간 셈이다.

식품, 건강기능식품보다 품질관리기준이 엄격한 의약품에서도 가짜 백수오를 차단하지 못한 것이다. 다만 원료 사용 이력 추적을 통해 이엽이피소 등의 혼입 사실은 알아냈다.

제약사들이 가짜 백수오를 사용한 이유는 백수오와 이엽이피소를 분별해내는 관리 기준이 없었기 때문이다. 식약처는 지난해 10월 생약규격집 개정을 통해 백수오와 이엽우피소를 구분하는 유전자 분리 및 증폭반응 시험법을 도입했다.

기존에는 원료에 이엽우피소가 혼입됐더라도 자체적으로 걸러낼 수 있는 장치가 없었다는 의미다. 더욱이 이엽우피소가 백수오 대신 들어갈 가능성에 대한 인지도 없었다.

업계에서 “식약처가 애초부터 이엽우피소에 대한 기준 규격을 설정하지도 않았으면서 안전성과 무관하게 책임은 모두 제약사들이 지게 됐다”고 하소연하는 이유다. 제약업체들은 석면이 혼입된 ‘탈크’ 원료가 의약품에 극미량 들어갔다는 이유로 1122개 품목의 판매가 중단된 악몽을 떠올린다. 당시에도 식약처는 ‘석면 탈크’의 기준조차 없었고 회수 의약품이 인체에 무해하다고 판단한 바 있다.

식약처 “벤조피렌 저감화 방안 제출”..제약사들 “안전관리 책임 전가” 반발

최근에는 식약처가 천연물 의약품의 벤조피렌 관리 기준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내면서 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식약처는 지난 22일 제약사 89곳에 천연물의약품 벤조피렌 저감화 관리방안을 30일까지 제출하라고 지시했다.
식약처는 지난 22일 서울 서초구 한국제약협회에서 천연물의약품을 보유한 89개사 실무자를 대상으로 설명회를 열어 ‘벤조피렌 저감화를 위한 관리방안’을 오는 30일까지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원료한약재부터 추출물, 완제의약품 등에 대한 벤조피렌 검출 현황을 모니터링하고 벤조피렌을 줄일 수 있는 제조공정 대책을 1주일만에 마련하라는 지시다.

대한한의사협회가 지난 2013년 ‘스티렌’, ‘조인스’, ‘레일라’, ‘신바로’ 등에서 벤조피렌이 검출됐다며 판매금지와 회수·폐기를 요구하면서 천연물의약품의 벤조피렌 안전성 논란이 불거졌다. 식약처는 벤조피렌처럼 제조과정에서 자연적으로 생성된 물질에 대해서는 별도의 기준을 운영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식약처 관계자는 “완제의약품에 대한 벤조피렌 기준은 설정돼 있지 않지만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제약사들에 당부했다”고 말했다. 식약처도 현재 안전성 확보 차원에서 벤조피렌 저감화를 위한 연구용역을 진행 중이다.

동물이나 식물 등에서 원료를 추출하는 천연물의약품은 ‘벤조피렌’ 발생 위험성에 노출돼 있다. 한약재와 같은 식물을 고온에서 건조하거나 끓이는 과정에서 발암물질인 벤조피렌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는 게 제약사들의 설명이다.

업계에서는 낮은 온도로 원료를 가열하는 등의 방법으로 벤조피렌을 다소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관측한다. 이때 제조원가가 치솟을 가능성이 있다. 엄격한 관리기준이 도입되면 원료 수급에도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업계 한 관계자는 “기존에 이엽우피소나 벤조피렌 등 관리 기준도 설정되지 않았고 제약사들이 고의적으로 불량 원료를 사용한 것이 아닌데도 여론의 눈초리에 떠밀려 식약처가 기업들에 안전관리 책임을 떠 넘기려 한다”고 성토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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