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換亂10년)“위기의 전조”..한보 사태②

무리한 금융대출로 쌓아올린 모래성
97년 대기업 연쇄부도 신호탄

  • 등록 2007-12-03 오후 4:35:16

    수정 2007-12-03 오후 4:35:16

[이데일리 이종석기자] 97년 4월17일 국회 한보조사특위 청문회장.
증인으로 나온 이형구 전 산업은행 총재에게 특위의원들의 서릿발 같은 추궁이 쏟아졌다.

“92년 12월31일 이루어진 한보에 대한 외화대출은 사업성 검토와 기술검토도 이루어지지 않은 채 차입신청 후 불과 4일만에 초고속으로 진행됐다. 타당성 조사도 하기 전에 먼저 대출해준 이유는 무엇인가”
“당시 정 회장이 한보의 자금실무자에게 “산업은행에 대출신청한 것이 잘 될테니 염려말고 돈받을 준비나 하라”고 지시했다는데 증인과 정 회장간에 사전약속이 있었던 게 아니냐”

“…”
이 전 총재는 곤란한 듯 답변을 거부했다.

◇ 은행대출 4년만에 8배 급증

91년 2월 수서사건 파문으로 구속됐던 정 회장은 그해 7월 집행유예로 풀려 나오면서 내밀하게 그룹 재기에 나섰다. 표면상 경영 전면에는 등장하지 않았지만 당진제철소 완공을 그룹 재도약의 계기로 설정하고 제철소사업 추진을 위한 자금동원에 총력을 기울였다. 정 회장의 자금동원 타켓은 은행이었다.

수서사건 이후 한보그룹에 대한 금융권 대출이 재개되기 시작한 것은 92년말 산업은행의 외화대출이 그 시발점이 된다.

외화대출이란 은행들이 해외에서 직접 조달하거나 한국은행에서 빌린 외화를 시설재 수입결제용으로 빌려주는 제도로, 장기저리(대출금리 7%)라는 잇점 때문에 특혜성 자금으로도 불린다.

외화대출은 특히 주무부처인 상공부의 추천을 받아야만 하는데 당시 상공부는 34개 업체에 4억200만달러를 배정하면서 유독 한보철강에만 3600만달러라는 거금을 추천해 물의를 빚는다. 3600만달러는 당시 1개사당 평균 배정액 1100만달러의 세배가 넘는 금액으로 상공부의 추천 여부가 외화대출에 그대로 반영된다는 사실에 비추어 두고두고 특혜시비의 고리로 남는다.

상공부의 외화대출 추천을 근거로 산업은행은 차입신청 접수 후 불과 4일만인 92년 12월31일 한보철강에 1984만달러를 전격 대출해준다. 자금지원은 말그대로 ‘번갯불에 콩구워 먹듯’ 신속하게 집행됐고, 대출이 이루어지기 전에 검토했어야 할 ‘타당성평가 보고서’는 수십일이 지난 다음해 1월에야 제출됐다.

산업은행은 이처럼 ‘한보 금융여신 재개’의 총대를 짊어지고 나섰고 이후 제일 조흥 외환은행 등 시중은행들이 합세하면서 한보그룹의 여신규모는 눈덩이 처럼 불어나기 시작한다. 93년까지만 해도 3889억원에 불과했던 한보철강 은행권 여신은 94년들어 1조4924억원, 96년 3조208억원, 부도나던 97년 1월말에는 3조2648억원으로 급격히 늘어났다. 불과 4년 사이 은행차입규모가 8배 가까이 급증한 것이다.

산업은행은 이 같은 한보그룹 여신 주도에 대한 책임을 물어 후일 은행감독원으로부터 문책을 받게 된다. 은감원은 한보부도로 인한 파장이 확산되던 97년 2월20일 채권은행들에 대한 특검결과를 발표하면서 산업은행을 ‘여신취급 불철저기관’으로 문책했다.

은감원은 “당시 한보철강이 제시한 1,2단계 사업에 대한 사업성 검토에서 한국기업평가로부터 ‘실현가능성에 대한 현실성과 구체성이 없다’는 의견을 제시받았음에도 산업은행이 이를 무시하고 대출을 강행했다”고 문책사유를 밝혔다.

한보그룹에 대한 금융권 대출은 이렇게 의혹과 특혜시비 속에서 그 막을 올린다.
수서사건 이후 은퇴했던 정태수 회장이 문민정부 출범 후인 93년 경영일선에 복귀한 것과 때맞춰 산업은행을 필두로 일반 시중은행들 까지 합세해 일제히 한보지원에 팔을 걷어부치고 나선 것이다.

◇ 배포 큰 ‘떡값’과 금융권 대출

93년을 넘기면서 한보그룹은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무한한 자금동원력을 과시하기 시작한다.

무려 5조원대의 자금이 투입되는 아산만 철강단지 사업을 추진하면서 동시에 신규사업에 잇따라 진출하는 등 근거를 알 수 없는 자금들이 한보의 주머니로부터 쏟아져 나왔다.

한보그룹은 93년 7월 연매출 400억원대의 상아제약을 인수한데 이어 94년 7월 삼화상호신용금고, 96년 2월 유원건설, 96년 11월 대동조선을 잇따라 인수하면서 그룹 외형을 문어발식으로 확장해 나갔다.

문제는 그 막대한 자금이 어디서 나왔느냐 하는 점이다.
대답은 간단했다. 은행을 비롯한 각 금융기관들이 적기마다 정 회장의 자금줄 역할을 자임하고 나섰던 것이다.

부도가 나던 97년 1월말 현재 한보철강의 은행권 대출금은 3조2648억원. 여기에 제2금융권 대출과 회사채 등 사채발행분까지 포함시킬 경우 금융기관으로부터 빌린 자금은 총 5조559억원에 달한다.

검찰은 이 가운데 3조5912억원은 시설자금으로, 1조2511억원은 운영자금으로 활용됐고, 나머지 2136억원은 유용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발표했다. 5조원에 달하는 투자금액중 90% 이상을 금융기관 돈으로 메꾼 데 이어 그나마 일부를 다른 용도로 유용했다는 얘기다.

한보그룹이 이처럼 금융기관 자금을 마치 제 돈처럼 갖다 쓸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정 회장 특유의 로비력이 큰 몫을 담당한다. 남들보다 ‘0’자 하나가 더 붙은 자금을 살포한다는 정 회장의 배포 큰 떡값이 정계와 관계를 무시로 넘나들면서 위력을 발휘했다.

홍인길 전 청와대 총무수석이 95년 1월 이후 다섯차례에 걸쳐 10억원의 자금을 수수했으며, 주거래은행인 제일은행의 이철수 신광식 행장, 우찬목 조흥은행장, 김우석 전 내무부장관, 황병태 정재철 신한국당 의원, 권노갑 국민회의 의원 등이 정 회장으로부터 각각 수억원씩의 로비자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철창신세를 졌다.

홍 전수석은 93년 8월 사정당국이 한보그룹에 대한 내사에 착수하자 이를 무마해준 혐의가 적용됐다. 홍 전수석은 특히 한보부도 파문이 확산되던 97년 2월5일 “나는 실세가 아니라 불면 날아가는 깃털에 불과하다”는 깃털론을 제기해 파문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정 회장이 자칭 ‘한국의 보물(韓寶)’를 ‘크게 지킬(泰守)’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 같은 무차별적인 자금살포가 주요 무기로 작용했던 셈이다.

그러나 사과상자에 차곡차곡 쌓여 뭉텅이로 전달된 수십억원씩의 로비자금은 불과 수년 후 ‘한국의 보물’뿐만 아니라 정관계는 물론 ‘대한민국 경제’를 총체적으로 뒤흔드는 독약으로 전락하고 만다.

◇ 설비도입 과정의 의문

한보철강은 막대한 금융자금 대출 외에 각종 시설재 도입과 사회간접시설 설치 과정에서도 상당한 특혜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우선 제기되는 것이 코렉스(COREX) 공법으로 알려진 용융환원제철 기술의 도입이다.

통산부는 95년 7월 “코렉스공법이 세계적으로 검증을 받지 못했고, 상업성이 불투명하다”는 이유를 들어 포철의 코렉스공장 건설에 반대의견을 표명한 반면 한보에 대해서는 기술도입을 허가했다. 동일 사안에 대해 정부가 이중적인 결정을 내린 것이다.

한보의 이면사를 살펴보면 이처럼 묘한 사연들이 도처에서 발견된다. 다른 기업이었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한보라는 이름하에 마치 정해진 수순처럼 자연스럽게 진행되곤 했다.

이용남 한보철강 사장은 국회 청문회 증언에서 한보철강을 “실패로 끝난 미완성교향곡”에 비유했다. 하지만 한보철강은 정상적으로 완공됐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터지고야 마는 운명의 레퀴엠(진혼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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