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서울시 장터에는 없는 전통주

  • 등록 2016-06-30 오전 10:59:15

    수정 2016-06-30 오전 10:59:15

[이데일리 김태현 기자] “사회적 기업으로 전통주를 알리는데만 3년이라는 시간을 쏟아부었는데 서울시는 매번 ‘술이라서 안 된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니 답답한 노릇입니다”

지난 27일부터 30일까지 서울시 주최로 청계광장과 시민청 등 서울 곳곳에서 ‘작은시장’이 열리고 있다. 영세 상공인들이 자신들의 제품을 선보일 수 있는 자리다. 이번 행사에는 커피와 빵, 도시락 등 다양한 식음료 업체가 참여했지만 전통주는 찾아볼 수 없다.

대대적인 마케팅을 펼치기 어려운 영세한 전통주 제조업체 입장에서 이런 행사는 전통주를 널리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그러나 이번 행사에서 판매는 물론 시음조차 금지됐다. 서울시가 술이라는 이유로 대규모 행사에서 전통주를 배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행사 뿐만이 아니라 이전에도 서울시에 수차례 전통주 관련 사업을 제안했지만 ‘술은 안 된다’는 말만 들었다”며 “술이라는 이유로 외면받는 게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물론 서울시의 입장도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심혈을 기울여 만든 행사가 술 때문에 엉망진창이 된다면 그것도 그거대로 문제가 되니 말이다. 회사 회식이나 대학 축제 등 소규모 행사에도 술에 취한 사람 때문에 일어난 사건·사고가 비일비재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사건·사고들은 ‘술에 취한 사람’ 탓에 일어나는 일이지 ‘술’ 때문은 아니다. 최근 노웅래 더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 역시 이런 취지라고 볼 수 있다. 개정안은 술에 취한 상태에서 성폭행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한 형벌을 감경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성폭력범죄를 술 탓으로 미루지 말라는 뜻이다.

전통주는 한 나라의 문화와 전통을 담고 있는 훌륭한 문화유산이다. 일본 전통주인 사케도 현재는 일본을 대표하는 문화로 자리잡았다. 우리나라도 일본 못지 않은 다양한 특색의 전통주를 가지고 있다. 새로운 한류 콘텐츠로 자리잡을 여력도, 의지도 있다. 필요한 건 지원이다.

맥주 열풍에 이전보다는 못하지만 젊은이들의 전통주 사랑도 계속되고 있다. 젊은이들의 핫플레이스라고 할 수 있는 신촌과 홍대 등 대학가에서는 전통주만 전문으로 다루는 주점들이 속속 문을 열고 있고 전통주 제조업체들의 세대교체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전통주에 대한 지원사격은 계속되고 있다. 정부에서는 전통주의 원할한 유통을 위해 유통업체 지원에 나섰고 지방자치단체들은 자기 지방에서 나는 전통주를 특산물로 내걸고 관련 프로모션과 행사들을 통해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

속담 중에 ‘구더기가 무서워서 장 못 담근다’라는 말이 있다. 쓸떼없는 걱정이 많다는 뜻이다. 서울시가 주취 사고라는 ‘구더기’만 걱정하다가 전통주라는 ‘장’을 놓칠까 걱정된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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