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국내 해운업을 살리는 정책 고려할 때”

  • 등록 2015-11-09 오전 11:45:07

    수정 2015-11-09 오전 11:45:07

대우조선해양이 건조한 1만8000 TEU급 컨테이너선의 시운전 모습. 대우조선해양 제공.
[이데일리 정태선 기자] 2008년 이후 퇴출되거나 법정관리에 들어간 해운사가 80여개에 달한다. 이중에는 국내 3위 선사인 ‘STX팬오션’과 4위 ‘대한해운’도 포함돼 있다. 국내 12위 선사인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해운사의 근간인 선박과 컨테이너는 물론 해외터미널이나 알짜 사업부까지 내다 팔고 있다. 이로 인해 미래의 성장 기반마저 상실할 위기에 처해있다.

이와 관련 최근 정부는몇 가지 지원책을 내놓고 있다. 회사채 신속인수제를 비롯해 해양보증기구, 해양금융종합센터 설립, 선박은행 조성 등의 지원책이 그것이다. 하지만 그야말로 생색내기에 지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회사채 신속인수제를 이용하는 한진해운·현대상선의 실질 이자율은 10% 이상의 고금리로 기업들은 이자 갚기도 버거울 정도다. 그마저도 올해 말로 제도가 폐지된다. 또 해운보증기구의 자본금은 당초 2조원의 계획에서 5500억원으로 축소됐다. 이마저도 정부 출자가 늦어지면서 결국 1500억원으로 시작했다. 통상 선박 1척 가격이 수천억원에 달하는 점을 감안했을 때, 그 지원 규모가 턱없이 부족하고 실효성 없는 정책이란 평가다. 반면 중국, 일본, 유럽 등 해운 강국들은 자국 해운선사들이 불황을 헤쳐 나올 수 있도록 수조원의 금융지원을 아낌없이 지원하고 있다. 조선업 지원·해운업이 먼저다. 지난 10월 29일 정부와 금융당국은 대우조선해양의 경영정상화를 위해 4조 2000억원의 자금을 수혈하겠다고 발표했다. 반면 7년 넘게 장기불황을 겪고 있는 해운업계는 정부의 마땅한 자금지원 없이 자구책만을 요구받고 있는 실정이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등 해운 ‘빅 2’는 2013년 말 구조조정 안을 발표한 이후 핵심 자산, 계열사 매각 등으로 6조원이 넘는 자구를 이행했다. 이를 두고 조선과 연관 산업인 해운업에 대해서는 유난히 지원에 인색한 것 아니냐며 “형평성에 어긋난다”,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 등등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이에 금융당국은 “조선업이 방위산업을 영위하고 있고 대규모 고용과 협력업체를 창출하는 등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이유를 들며 조선업 지원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하지만, 해운을 살리지 않고 조선을 살릴 수 없다. 해운산업은 전후방으로 조선-철강-보험-금융 등 다양한 산업과 연관되어 있고 그 파급효과가 크다. 특히, 해운업은 반도체, 석유제품, 철강, 자동차, 조선 등과 함께 6대 외화가득산업으로 미래 국가 성장동력이자 국부창출의 원천이다. 2014년 해운업의 외화가득액은 346억 달러로 382억 달러를 기록한 조선업과 견주어 결코 뒤처지지 않는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또 현재 해운 관련 업종이 29만명의 종사자를 고용하고 있어, 23만명의 종사자가 있는 조선업에 비해 더 높은 고용 창출 효과를 보이고 있다. 해운은 유사시 전시물자 수송을 담당하는 등 제4군의 역할까지 수행한다. 우리나라의 전략물자를 수송하는 등 국가 경제의 대동맥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현대상선 제공.
‘조선업’을 살리기 위해서는 먼저 ‘해운업’을 살려야

최근 국내 조선사의 위기는 해양플랜트 사업에서 큰 손실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이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주된 사업 분야인 선박 수주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데 있다. 글로벌 해운업계가 장기불황으로 선박 발주를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진해운, 현대상선 등 국내 해운사들 역시 2010년 이후로 선박 발주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따라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내 해운사가 국내 조선사에게 배를 정기적으로 발주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조선업을 살리기 위해서 먼저 해운업을 살려야 하는 것이다. 이웃나라인 중국과 일본만 해도 자국 해운사들이 자국 조선소에 선박을 발주할 수 있도록 정부가 자국 해운사들에게 막대한 자금을 지원해주고 있다. 중국 정부는 COSCO, 차이나쉬핑 등 자국 해운사에 10조원 이상을 지원해줬다. 일본은 자국 해운사들이 이자율 1%로 회사채를 발행해 대형 선박을 발주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해운업은 조선을 비롯해 철강·금융·관광·산업 등 전 산업의 연계 발전을 유도할 수 있는 선도 산업이다. 해운업을 먼저 살려야 연관 산업들이 같이 살아날 수 있다.

국내 해운업 위기는 과거 정부의 잘못된 정책도 원인..실질적 대책 필요

현재 국내 해운사들의 위기는 해운사 혼자만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현 위기의 근본적 원인에는 과거 정부의 잘못된 경제 정책 속에 국적선사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쌀 때’ 배를 팔고 ‘비쌀 때’ 배를 구입했던 악순환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과거 2000년 외환위기 당시 정부는 기업들에게 ‘부채비율 200%를 맞출 것’을 강요했다. 이 때문에 국적선사들은 약 110여 척의 선박을 해외에 헐값으로 매각했다. 하지만, 이후 호황이 왔을 때는 운영할 배가 부족해져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선박을 다시 확보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 국적선사들은 IMF 외환위기가 끝나고 호황이 왔던 2005년부터 2008년 사이에 선박을 높은 가격에서 발주하거나 빌려왔다. 특히, 용선 계약은 대게 15년 이상 ‘장기계약’으로 맺어져 있어 한번 높은 가격에서 계약을 맺으면 두고두고 발목을 잡히게 된다. 현재 국적선사들은 이같이 고점에서 장기 용선 계약을 맺은 고용선료 선박으로 인해 영업적자에서 벗어날 수 없는 구조에 빠져있는 것이다.

정부가 고용선료 선박 정리를 도와줘야..해운과 조선이 다함께 살 수 있는 방안

국적선사들이 고용선료 선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고용선료 선박을 조기 반선시키고 저가의 선박으로 다시 선대를 구성해야 한다. 그러나 그동안 고강도 자구안 이행과 차입금 차환으로 여유자금이 없는 국적선사들은 돈이 많이 드는 고용선 선박 정리 작업에 손도 데지 못하고 있다.

지금 상황에선 국적선사들이 직접 고용선료 선박 정리에 나설 여력이 없는 만큼 정부가 나서 국적선사의 선박 정리를 도와주는 방안을 고려해볼 만하다. 우선 정부가 ‘제3기구’를 통해 국적선사들의 고용선료 계약을 이관 받는다. 이 기구는 정부의 자금 지원 속에 국적선사의 고용선료 계약을 인수한 후, 다시 선사들에게 낮은 가격으로 선박을 빌려준다. 이 과정에서 차이 나는 손실은 해당 해운사가 앞으로 돈을 벌면서 상환하도록 해 당장 자금난을 겪고 있는 선사들의 부담을 낮춰줄 수 있다. 결과적으로 국적선사 입장에서는 그동안 실적을 악화시키던 ‘고용선 불량 선박’을 털어내고 ‘저원가 우량선박’으로만 선대를 재구성해 원가경쟁력을 회복시킬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정상화된 국적선사들이 지금과 같이 선박 가격이 낮은 시기를 활용해 국내 조선사들에게 신규 선박을 발주할 수 있고, 선박 수주가 없었던 국내 조선사들은 안정적인 수주 물량을 받게 되면서 조선·해운 산업간 선순환이 이뤄지게 된다.

정부는 국내 해운사들이 초대형 에코십을 발주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최근 머스크 등 글로벌 선사들은 1만8000TEU급 이상 초대형 에코쉽을 잇따라 발주하고 있다. 국내 해운업계 사이에서는 ‘이번에도 에코쉽을 발주 못할 경우 영원히 경쟁에서 뒤쳐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하게 확산되고 있다. 국내 해운사들이 에코쉽 발주를 국내 조선소에 하게끔 도와주는 방식이 필요하다. 파이낸싱을 통해 국내 조선사에 에코쉽을 발주한 후, 국내 해운사들에게 합리적인 가격으로 임대 해주는 방식을 고려할만한다. 이는 국내 해운사도 살리고 국내 조선사도 살리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 해운·조선 산업은 국가경제에 필수불가결한 기간산업이다. 현재 불황을 극복하고 해운ㆍ조선 강국의 지위를 공고히 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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