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간판3사의 몰락..잘라파고스+엔고

  • 등록 2012-11-26 오후 4:00:16

    수정 2012-11-26 오후 4:00:16

[이데일리 김유성 기자] 현재 상한가를 달리고 있는 애플이 2000년대 IT 가전업계 혁신을 주도했다면 지난 80~90년대에는 소니·파나소닉·샤프 등 ‘일본 가전 3총사’가 전세계 가전업계를 이끌었다.

그러나 불과 20년 사이 이러한 판도는 뒤바뀌었다. 애플과 구글이 새로운 혁신 기업으로 떠오른 가운데 한국과 대만의 가전기업들이 전 세계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다. ‘일본가전 3총사’는 엔화가 강세를 띄는 엔고(円高)현상에 따른 수출 경쟁력 저하와 전 세계 소비자의 눈길을 끌만한 ‘킬러 상품’ 부재로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파나소닉은 올 회계연도(2012년4월~2013년3월)에만 7650억엔(10조1146억원)의 손실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샤프의 적자 규모는 올해 4500억엔(5조9498억원)로 예상된다. 3개 업체 가운데 그나마 사정이 제일 좋은 소니도 올 상반기에만 주력분야인 TV업종에서 부진을 면치못해 올 회계연도 상반기에만 401억엔(5300억원)의 적자를 봤다.

LG경제연구원은 ‘일본 기업의 실패와 성공의 교훈’ 보고서에서 일본 기업들이 1990년대 성장 변곡점에서 혁신을 추구했지만 방향을 잘못잡았고 기존 기술을 개량하는 데만 안주해 제품이 진부해졌다고 지적했다.



◇잘라파고스 ..글로벌 시장 소외

일본 전자 업계의 몰락 원인으로 ‘잘라파고스’(재팬+갈라파고스)라는 단어가 빠지지 않는다. 자신들이 세계 최고라는 자만심과 내수시장 집중이 빚어낸 현상이다.

80~90년대 세계 최고의 기술력으로 글로벌 가전 시장을 이끌던 때에는 소니와 같은 일본 가전이 ‘파괴적 혁신’을 이끌었다. 스티브 잡스가 1997년 애플에 복귀하면서 가전분야 진출을 염두하고 소니를 롤모델로 삼을 정도였다.

외국산 제품에 배타적인 1억3000만명의 막강한 내수시장도 이들에게는 드넓은 안마당이었다. 한 예로 세계 음악시장이 애플의 아이팟을 위시한 MP3플레이어 위주로 재편될 때도 일본인들은 소니가 1992년 출시한 MD(미니디스크)플레이어를 사줬다. 결과적으로 이는 소니가 세계시장 변화에 둔감하도록 만들었다. 국내 시장에 안주하게 되면서 세계시장 흐름에 뒤쳐지게 된 셈이다.

실제 이들 3사의 내수 비중은 경쟁업체인 삼성전자나 LG전자와 비교하면 높은 편이다. 소니의 지난해 매출 중 내수 비중은 32%에 달했다. 파나소닉과 샤프는 이보다 더 심해 각각 48%, 53%에 이른다. 내수 비중이 20%에 미치지 못하는 한국의 삼성전자, LG전자와 대비되는 대목이다.

◇‘승자의 저주’..성공 공식의 답습

해외 가전시장 트렌드가 애플과 같은 혁신기업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동안 일본 전자 기업들은 80~90년대의 성공 공식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했다. 기존 자신들의 성공작에 대한 개량과 진보만 있었을 뿐 새로운 전기를 만들어낼 혁신을 이뤄내지 못한 것이다.

일본기업 회생 전문가로 유명한 하세가와 가즈히로는 자신의 책 ‘사장의 노트’에서 “리더십 부재가 제품의 질을 하락시킨 주요인”이라며 “일본 가전업체들은 결과를 책임지고 급변하는 전자업계 내에서 성과를 내기 위한 도전 정신 없이 기존 성공 공식을 답습했다”고 꼬집었다.

실제 일본기업들은 세계 최초로 인터넷 접속이 가능한 휴대폰을 처음 상용화해 GPS서비스, 전자화폐 기능을 넣었다. 그러나 기존 휴대폰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화려한 기능만 추가했을 뿐 애플의 아이폰처럼 혁신적인 제품을 생산하는 데 실패했다.

이는 일본 가전 3총사의 주력제품인 TV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브라운관 TV 시대 때 최대 강자였던 소니는 LCD로 시장 트렌드가 바뀌는 와중에 적극적인 마케팅을 망설였다. 파나소닉은 PDP를 고집하다 수 조원에 이르는 손실을 봤고 시장 선점 기회마저 잃었다.

◇엔고, 수출 경쟁력 상실

일본 기업들의 경쟁력 악화의 근본적 배경에는 엔화 가치가 높아지면서 일본 제품이 비싸지는 ‘엔고’현상을 들 수 있다.

사실 2000년대 중반까지 미국경제가 호황을 누리는 동안 엔화는 달러화 강세로 인해 약세를 나타냈다. 일본 기업들은 엔저 호황이 계속될 것이라고 판단했고 자국내 생산설비를 늘리는 등 엔고에 대한 대비를 하지않았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달러화 대비 안전자산으로 인식된 엔화로 해외자금이 몰렸다. 반면 원화 가치는 하락하면서 한국 기업들은 가격 경쟁력에서 상대적 우위를 점하게 됐다. 2009년 세계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때에 원화는 100엔당 1600원대 수준까지 올라갔다. 2012년에도 원화는 100엔당 1300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유럽, 미국 등 일본 가전제품을 사주던 선진국 시장 경기가 둔화되면서 일본 가전기업들은 더욱 위축됐다.

◇자국 일괄생산 주의..엔고가 겹치며 악재로 작용

부품부터 완제품까지 자체적으로 일괄생산하고 해외로 생산가지를 좀처럼 내주지 않으려는 일본 산업계 특유의 성향도 패착의 원인으로 지적된다.

애플은 생산과 부품을 외부에서 조달하는 아웃소싱 방식으로 제조원가를 낮췄다.

그러나 일본 업체들은 품질 보장을 명분삼아 이를 외면했다. 이 때문에 신제품 개발이 지연됐으며 가격 경쟁력도 상실했다. 여기에 엔고 현상까지 겹쳐 일본내 생산 제품들은 경쟁력을 급속히 잃었다.

전문가들은 일본 기업이 금과옥조로 여겨온 ‘평생고용’정책을 유지하기 위해 자국내 일괄생산라인을 고집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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