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뜩이나 통신회사들이 설비투자를 줄여 장비업계의 경영난이 심각해지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KT에 ‘5년내 30% 이상 투자(기지국 8700국)’하라는 할당조건을 지키라고 요구한 것이다.
하지만 KT가 이를 지킬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KT가 확보한 이 주파수는 LTE용으로 받아갔으나 경쟁사 주파수 사이에 낀 협대역(10MHz)이어서 다른 주파수와 묶어 광대역 LTE로 쓰기 어렵다. 당시 자사 이익보다는 경쟁사 피해를 최우선으로 했던 게 현재의 어려움을 초래했다는 분석이다.
4일 미래창조과학부와 통신장비 업계에 따르면 미래부는 지난 3월 KT에 800MHz 주파수 할당조건을 이행하라는 시정명령서를 보냈다.
KT는 2011년 LTE 주파수 경매에서 800MHz(10MHz폭)을 낙찰받았는데 할당조건은 10년 동안 주파수를 사용하면서 기지국 2만9000국을 설치하는 것이었다. 구체적으론 △3년 이내에 15%이상인 4350국을 설치해야 하고 △5년 이내에 30%이상인 8700국을 설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KT는 2015년 미래부 이행점검 때까지 단 한 개의 기지국도 설치하지 않았다.
당시 미래부 전신인 방송통신위원회가 2011년 6월 29일 낸 공고(방송통신위원회공고 제2011 - 45호)에 따르면 정부는 전파법령에 따라 할당조건으로 부여한 사항에 대한 이행점검 후 미이행 시 전파법령에 따라 주파수 할당의 취소 또는 이용기간 단축 등 필요한 제재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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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부 관계자는 “전파법령에 한 번 정도는 기회를 줄 수 있게 돼 있다”며 “내년(5년차) 이행점검 때까지 다 투자할 것을 시정명령으로 요구했고 5년 차 점검 때 문제가 생기면 제재에 나선다고 했다. KT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고 말했다.
KT 800MHz LTE 투자 어렵네
그러나 업계는 KT가 할당조건대로 LTE 기지국을 구축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장비 업계 관계자는 “해당 주파수는 LTE 표준 대역이 아니어서 단말기가 없다. KT는 (정부가) KT파워텔이 쓰는 TRS 대역을 조정해주면 확보한 협대역(10MHz) 주파수와 파워텔 주파수 10MHz를 합쳐 표준대역으로 요청하면 쓸 수 있다고 하지만 가능할지 의문이다. IoT 전용망으로 쓰기에도 아까운 상황일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처럼 통신사들이 주파수를 일단 확보한 뒤 투자는 제대로 안 하는 상황이 장비업계의 생존을 위협한다는 점이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가 올해 상반기 지출한 설비투자(CAPEX) 액수는 1조4367억 원에 그쳐 가이던스 대비 23.6%에 머물렀다. 이는 지난해 상반기 32%가 넘었던 것과 온도 차가 난다.
장비 업계는 최근 끝난 이통3사의 LTE 주파수 경매를 기대하는 모습이나 중계기 분야 저가 경쟁이 우려되고 있다. 700MHz 대역이 유찰되면서 각사가 가장 효율적인 투자를 할 수 있게 된 이유에서다.
LG유플러스는 기존에 광대역으로 쓰고 있던 2.1GHz를 추가로 받아 대부분 중계기를 구축해도 할당조건(투자 의무)을 지킬 수 있게 됐다. 기지국 숫자로 투자 의무를 준 게 아니라 무선국 준공검사 기준(출력 200밀리와트 이상)으로 한 만큼 기지국보다 훨씬 싼 중계기를 주로 구축해도 문제가 없다.
중계기는 삼성이나 화웨이, 에릭슨LG 등 대기업이 주도하는 기지국과 달리 주로 국내 중소기업들이 담당하고 있어 긍정적인 측면이 많다. 하지만, 너무 많은 중계기 업체들이 LG유플러스 입찰에 몰리다 보니 최저가 입찰이란 피해가 생기고 있다.
장비 업계 관계자는 “미래부 기준이 기지국이 아니라 무선국 준공검사 기준이 되면서 LG는 투자비를 줄일 수 있게 됐지만, 중계기 하나에 65만 원짜리 낙찰이 생기는 등 중계기 업체들의 피해가 우려돤다”고 말했다.
미래부 관계자는 “올해 주파수 경매가 투자 활성화의 기폭제가 될 수 있도록 이행 점검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