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닛케이에 따르면 경영난에 허덕이며 돈줄이 말라가던 샤프는 작년 말부터 본격적으로 사면초가에 몰린다. 일본 정부는 엔고와 대지진 여파로 가라앉고 있는 자국 제조업을 살리기 위해 지난해 1000억엔 규모의 추경예산안을 책정, 샤프를 지원하려다 올 초 돌연 태도를 바꿨다.
당초 일본 정부는 엔화 강세로 고꾸라지는 자국 제조업체를 살리기 위해 다양한 구제책을 검토하고 있었다. 정부가 공동 출자 회사를 만들어 공장이나 설비를 매입, 임대한다는 방안 등이 거론됐다. 엔고 여파로 자국 제조사들이 외국으로 생산시설을 옮긴다면 기술 유출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내용이 일본 매체를 통해 보도되기 시작하면서 정부가 발칵 뒤집어졌다.
샤프는 그나마 의지하고 있었던 대만 혼하이와의 출자협상도 어려워지는 상황이었다. 혼하이는 작년 3월 샤프에 주당 550엔씩 총 670억엔을 투자하기로 합의했으나 이후 샤프 주가가 끝없이 떨어지자 투자 집행을 미뤄왔다. 이때 등장한 사람이 이 부회장이다. 작년 12월13일 카타야마 미키오 샤프 회장은 이 부회장을 오사카 본사에서 맞는다.
당시 이 부회장은 미국 등 서구 선진국에서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대형 TV를 생산하기 위해 패널 생산사들과 접촉하고 있었다. 샤프 사카이공장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이 공장은 세계 유일의 10세대 패널 생산시설을 갖춘 곳으로 샤프의 사카이디스플레이프로덕트(SDP)란 회사가 운영한다. 혼하이도 작년에 이 회사에 자금을 대고 지분 46.5%를 확보했다.
이 부회장도 SDP에 관심을 보였다. 삼성전자가 샤프로부터 안정적으로 패널을 매입하는 대가로 SDP 지분을 달라고 요구했다. 자금을 투자할테니 안정적으로 패널을 공급해달라는 일종의 보증금과 같은 성격이다. 그러나 SDP의 대주주와 다를 바 없는 혼하이측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궈타이밍 혼하이 회장은 삼성전자를 겨냥해 “일본인은 절대 뒤에서 칼을 꽂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인은 다르다” 같은 혐한 발언을 하며 물의를 일으킬 정도였다.
이 부회장이 다시 카타야마 회장을 만난 곳은 한 달이 지난 1월7일 미국 라스베이거스다. 세계최대 가전전시회(CES)에 참석한 이 부회장은 카타야마 회장에게 “샤프에 출자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타진했고 이후 협상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두 회사는 그로부터 불과 2개월만에 ‘삼성전자가 일본 법인(SEJ)를 통해 샤프에 104억엔(약 1200억원)을 투자한다. 다만 샤프 경영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제휴계약을 발표했다.
닛케이는 샤프가 혼하이의 투자도 불발되고 정부 지원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 부회장이 ‘104억엔 출자’라는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고 표현했다. 아울러 이 부회장은 게이오대 경영학 석사과정을 밟았고 일본어를 유창하게 하며 지인도 많은 일본통이라고 소개했다. 삼성은 샤프와 손을 잡으면서 일본 샤프-미국 애플-대만 혼하이 협력관계도 뒤틀어지는 효과도 누리게 됐다고 평가했다. 결국 이 부회장이 절묘한 시기에 출자를 제안하면서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었다는 분석이다. 한편으론 이 회장의 샤프에 내민 손이 ‘구원’이 될지 ‘함정’이 될지는 조금 더 지켜 봐야한다며 우려섞인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