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가 노린 푸틴의 역습?…러, 경유·휘발유 수출 금지령

21일부터 무기한 수출 중단…최우방국 4곳은 제외
'세계 최대 경유 생산국' 수출 중단 소식에 유럽 경유가 5%↑
"러, 에너지 시장에서 영향력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 과시"
  • 등록 2023-09-22 오후 1:34:03

    수정 2023-09-22 오후 1:34:03

[이데일리 박종화 기자] 러시아가 자국 에너지 시장 안정을 이유로 경유와 휘발유 수출을 중단했다. 고유가를 틈타 러시아가 다시 한번 에너지를 무기화하려는 시도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러시아 모스크바 외곽의 정유공장.(사진=AFP)


21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러시아 정부는 이날부터 경유와 휘발유 수출을 무기한 중단한다고 밝혔다. 러시아 에너지부는 당국의 허락을 받지 않은 무단 수출 등으로 인한 러시아 국내 연료 가격 상승을 막귀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번 조치 이후에도 러시아의 최우방국이라고 할 수 있는 유라시아경제연합(벨라루스·카자흐스탄·아르메니아·키르기스스탄) 회원국엔 계속 수출이 허용된다.

로이터는 최근 정유공장의 유지·보수와 철도 병목 현상, 루블화 약세 등으로 인해 러시아에서 석유 공급이 위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연료 부족은 수확기를 앞두고 농기계를 돌려야 하는 러시아 남부 곡창지대에서 특히 심각하다. 내년 3월 대선을 치러야 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으로선 부담거리다.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러시아 국내는 물론 글로벌 에너지 시장에까지 충격을 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러시아는 지난해 경유 3500만톤(t), 휘발유 481만t을 수출했다. 특히 경유의 경우 세계 최대 생산량을 자랑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 등 서방 수출량은 줄어들고 있지만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로의 수출은 이어지고 있다.

러시아가 사우디아라비아 등과 손잡고 원유 감산을 고수하면서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보는 상황에서 경유·휘발유 공급까지 줄어들면 글로벌 에너지 시장은 또 한 번 출렁일 수밖에 없다. 난방 수요가 늘어나는 겨울까지 러시아의 수출 금지 조치가 이어질 경우 그 충격은 더욱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 컨설팅회사 우드매킨지의 앨런 겔더 부사장은 “이미 글로벌 경유 재고가 적은 상황에도 석유업계는 러시아의 수출 중단으로 줄어든 물량을 대체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블룸버그통신에 말했다. 수출 금지 조치가 발표된 첫 날인 이날, 유럽 디젤 가격은 1t당 1010달러를 넘어섰다. 전날보다 5% 가까이 상승한 값이다.

과거 에너지를 무기 삼아 국제 정치판을 좌지우지했던 러시아가 옛 버릇을 되찾을까 걱정하고 있다. 미국 정치 컨설팅회사 유라시아그룹의 헤닝 글로이스타인은 “러시아는 에너지 시장에서 영향력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 한다”며 “겨울이 다가오면서 경유 시장에 대한 공격은 유가는 가뿐히 배럴당 100달러 이상으로 상승시키고 전 세계 경제에 불편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에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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