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한국 대표팀이 20일 오후 9시45분(이하 한국 시간) 중국 충칭의 올림픽 스포츠 센터에서 열리는 2008 동아시아축구선수권 2차전에서 북한과 맞붙는다.
이날 경기는 다음달 26일 열리는 2010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3조 2차전의 전초전. 서로 전력 탐색에 초점을 맞출 수 있겠으나 지난 2005년 동아시아선수권 2차전 이후 30개월 만의 맞대결이기에 ‘질수 없다’는 분위기다. 남북의 특수한 상황에서 비롯된 라이벌 의식이 작용하는데다 남북의 현재 실력이 그대로 드러날 터이기 때문이다.
선수들간 양보할 수 없는 승부도 있다. 자존심을 건, 의미있는 경쟁이 있고 사연이 있는 대결도 있다.
▲부활한 박주영 vs 떠오르는 정대세...남북 에이스의 실력은?
맞대결의 백미는 되살아 난 박주영(23)과 북한의 골잡이 정대세(24)의 격돌이다. 남북의 에이스이자 간판 스트라이커의 ‘외나무 다리 결투’다. 이들의 발끝에 승부가 갈라질 가능성도 크다.
박주영은 이번 대회에서 ‘허정무호’의 핵으로 거듭났다. 한때 한국 축구 간판 골게터의 계보를 이을 ‘축구 천재’로 기대를 모으다 부상 등으로 부진했으나 '허정무호' 승선 후 달라졌다. 6일 투르크메니스탄과의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1차전에서 2도움을 기록한데이어 17일 중국전에서 두골을 몰아넣으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박주영이 A매치에서 골을 넣기는 2006년 3월 1일 앙골라와의 친선 경기에서 기록한 결승골 이후 1년 11개월 만이었다.
일본 J리그에서 활약하는 재일교포 정대세(가와사키)는 이번 대회를 통해 떠오른 북한의 골잡이다. 그의 실력은 일본에서 전지훈련을 가진 K리그 관계자들은 이미 파악하고 있었으나 17일 일본과의 1차전에서 현란한 개인기와 한 박자 빠른 벼락같은 슈팅으로 선제골을 작렬하는 모습으로 국내 팬들에게도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일본전의 정대세를 지켜본 허정무 감독은 “역시 볼을 찰줄 아는 선수”라고 평가하며 경계 대상 1호로 꼽았다. 허 감독은 전남 사령탑이던 지난 해 4월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에서 정대세에게 두골을 내주고 0-3으로 완패했던 아픈 기억이 있다.
정대세는 전날 인터뷰에서 “박주영이 한수 위”라고 겸손해 했지만 박주영이 남북, 그리고 K리그와 J리그의 자존심을 걸고 한판 대결을 펼치기에 충분한 상대다.
▲김남일 vs 안영학...자리는 맞바꿨지만
김남일(31,빗셀 고베)과 북한의 안영학(30,수원 삼성)은 똑같이 수비형 미드필더로, 현대축구에서 승부를 좌우하는 중원 전투에 나설 핵심요원들이다. 공교롭게 안영학은 일본 J리그로 진출한 김남일을 대체하기 위해 수원 삼성이 고르고 고른 자원이다. 수원은 안영학을 데려오는 대신 안정환을 부산에 내줬다. 그의 능력을 그만큼 높이 평가한 까닭이었다.
K리그를 떠났지만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 김남일은 여전히 한국 대표팀의 중심축이다. 해외파가 빠진 이번 대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중국전에서도 그라운드를 폭넓게 누비며 ‘진공청소기’라는 별명에 걸맞게 중국 공격의 맥을 끊으며 미드필드를 장악했다.
안영학은 2006년 K리그에 진출한 뒤 이런 김남일의 이력과 실력을 동경해왔다. 깍듯이 선배로 모시면서도 서로의 실력을 겨뤄보고 싶어 했다. 남북의 대표로서 처음 벌일 이번 대결이 그에게는 또 다른 의미가 있는 셈이다.
이번 대회가 끝나면 안영학은 K리그에서 김남일의 빈자리를 메워야 하고, 김남일은 안영학의 텃밭이었던 J리그에서 첫 시즌을 시작하게 된다. 안영학은 2005년부터 두 시즌 동안 나고야 그램퍼스에서 활약하다 2006년 K리그 부산으로 이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