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기자에서 'MBC 간판 앵커'로, 다시 열린우리당 창당 주역으로, 그리고 이번에 대선 후보로 확정되기 까지 정 후보의 인생 드라마를 살펴보면 이같은 그의 성격이 잘 드러난다.
◇ 방송기자에서 여권 대선 주자로
대선 재수생인 정 후보는 연설회 때 마다 "2002년 1승 15패로 국민경선을 마감한 후 내가 대통령이면 어떻게 해야 하나를 연구해 왔다"고 강조했다.
정 후보는 5년전인 2002년 민주당 국민경선 당시 16개 지역 선거 중 경기 지역을 제외한 모든 곳에서 패하면서도 경선을 완주했다. 이 때 노무현 대통령의 '노사모'를 보면서 자발적 서포터즈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이후 열린우리당 의장 선거와 총선, 지자체 선거 등을 거치면서 강화된 정 후보의 서포터즈 조직력은 이번 당 내 경선에서 승리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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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직후엔 정당 정치의 꽃이라는 당 대변인직을 수행했다. 부인인 민혜경씨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한다.
정 후보는 이번 경선에서도 당 내 후보 중 누구보다 착실하게 정책과 비전을 내놨다. 언론의 무관심 속에서도 8월 경선 레이스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매주 정책간담회를 가졌을 정도.
이런 정책 간담회는 합동연설회나 토론회에서 유권자에게 구체적인 '콘텐츠'를 제시할 수 있게 해준다. 관료 경험으로는 통일부 장관에 그쳤던 정 후보가 토론회 때마다 시청자들에게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면서 정책을 어필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 신의보다 민심 우선
정 후보의 또 다른 장점은 언론인 출신으로 민심 동향을 잘 간파한다는 점이다. 이는 정책 면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크게 다르지 않은 그가 노 대통령과 가장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다.
정 후보가 노 대통령과 결별을 선고한 것도 이미 참여정부를 떠난 민심을 기민하게 읽었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해 당의장으로 5.31 지방선거에서 참패하면서 위기를 맞자, 6월 여권 정계개편 와중에 열린우리당을 전격 탈당한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친노(親 노무현) 진영과 돌아서면서 '신의없는 정치인', 결실만 고스란히 빼먹는 '곶감 동영'이라는 비아냥을 듣게 된다.
그를 정치적으로 한 단계 도약시킨 사건인 2001년 '정풍운동' 역시 민심을 기민하게 읽은 결과다.
'정치는 민심을 알아야 한다'는 정 후보의 지론을 잘 엿볼 수 있는 것이 2004년 17대 총선 당시 불거진 정 후보의 `노인폄하' 발언이다. "60~70대 어르신들은 집에서 쉬셔도 된다"는 그의 발언은 보수 언론을 통해 전체 문맥과 달리 노인들을 폄하하는 근거로 활용됐다.
하지만 그는 언론과 각을 세우지 않고 어르신들께 속죄하는 '단식'의 길을 택했다. 참여정부 이후 보수 언론에 대해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던 노 대통령과는 '천양지차'(天壤之差)다.
열린우리당은 17대 총선에서 47석의 미니 여당에서 152석의 거여 세력으로 탈바꿈했다.
◇ '개성동영' vs '곶감 동영'
정 후보가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우는 '개성 동영'은 2004~2005년 사이 1년 6개월간 통일부 장관 시절의 업적을 내세운 것. 특히 그는 2005년 6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면담하면서 경색된 남북 관계의 탈출구를 마련했다.
하지만 정 후보의 개성공단 업적은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년 고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이 이미 구상한 개성공단 사업에 수저를 하나 얹은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
부인 민혜경씨와 사이에 2명의 아들이 있다. 아내가 다니던 대학 기숙사까지 찾아가 '개나리 꽃다발'을 내미는 구애작전으로 결혼에 골인한 그의 '성공담'은 젊은 시절 로맨티스트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일화다.
다음은 정동영 후보 약력.
▲전북 순창(54) ▲전주고 ▲서울대 국사학과 ▲MBC 정치부.사회부 기자 ▲국민회의, 민주당 대변인 ▲민주당 최고위원 ▲16대 대선 국민참여운동본부장 ▲열린우리당 당의장 ▲통일부장관 ▲당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