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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어디선가 본 듯한 잔상은 데자뷔가 아니었다. 푸치니의 걸작 ‘나비부인’을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2차대전 미국 해군장교 핑커튼과 열다섯 살에 게이샤가 돼야 했던 몰락한 집안의 딸 초초상의 비극이 시작된 그곳. 오페라의 배경쯤은 습관적으로 외우던 것 아닌가. ‘나가사키항구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 일본식 집.’ 그런데 그 집이 실제 있을 거란 생각까진 못했다. 항구의 정경을 쓸어담듯 굽어보는 그 집은 ‘구라바엔’. 일본으로 귀화한 스코틀랜드 무역상 토머스 글로버의 저택과 정원을 통칭하는 이름이다.
나가사키. 일본 남서쪽 큰 덩어리 섬 규슈의 서쪽 가장자리에 위치한 도시. 16세기 중·후반 일본이 제국주의 열강에 제일 먼저 문을 열어준 곳이 여기다. 동·서양의 서걱거리는 풍광이 빚어진 데는 이런 이유가 있다. 어느 하나로 통일되지 않은 서양문물이 우후죽순처럼 발을 내린 탓이다. 뜬금없이 네덜란드인이 살던 집성촌을 만나고 유럽풍 요란한 분수대를 스쳐 지난다. 가장 부정적인 결과물이라면 초초상의 자살이라고 할까. 일본의 관용 혹은 훼손. 이 부분에 대한 정리야 그들의 몫일 테니 새삼 왈가불가할 일은 못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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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이 따로 없다” 운젠온천
화산이 재앙이라면 온천은 그 위로다. 일본이 일본다울 수 있는 건 그 두 가지를 다 가져서다. 이질적인 문화를 고스란히 끌어안고 있는 나가사키지만 온천만큼은 그래도 ‘일본스럽다’. 그중 더 특별한 장소를 꼽는다면 단연 ‘운젠(雲仙)지옥’이다. 온천이란 게 지극히 정적인 콘셉트 아닌가. 뜨거운 물이 솟구치는 데도, 또 그 물에 몸을 담그는 데도 사실 힘들일 건 없다. 하지만 운젠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그 이름에 붙은 ‘지옥’이 심상치 않다.
규슈 서쪽지역을 일컫는 시마바라반도의 온천을 대표하는 운젠지옥은 후겐다케 산자락 남서쪽 해발 700m에 터를 잡았다. 왼쪽의 운젠시와 오른쪽의 시마바라시 경계에 걸쳐 있다. 그 틈새 6㏊에 걸쳐 절절 끓는 늪지대가 운젠지옥이다.
차로 산자락을 타고 올라 20여분. 고요한 마을입구에 들어서면 먼저 반기는 건 매캐한 유황냄새다. 냄새는 이내 시각적으로도 눈에 확 들어오는데 뭉실뭉실 피어나는 자욱한 수증기가 그것이다. 운젠지옥의 역설은 그 주변에 조성된 썩 평화로운 형태의 ‘지옥산책로’다. 한 시간이면 족히 돌아볼, 대략 2㎞에 걸친 길 곳곳엔 크고 작은 지옥이 펼쳐져 있다. ‘팔만지옥’은 나쁜 생각들을 경계하라는 뜻이다. ‘참새지옥’은 수다스러움을 멀리하라는 의미. ‘대규환지옥’도 있다. 운젠지옥 중 가장 고약한 곳으로 꼽히는 이곳은 음향효과까지 진동한다. 높은 압력을 받은 수증기가 부글부글 끓는 소리다. 유래도 있다. 에도막부시대 초대 쇼균인 도쿠가와 이에야스(1543~1616)가 개종을 거부한 천주교 신자들을 고문한 장소란다. ‘진짜 지옥’이었던 셈이다. ‘대규환’은 물이 끓어오를 때의 소리가 땅 아래 망자들이 울부짖는 절규처럼 들린다고 해 붙여졌단다.
어느 땅인들 아니겠는가. 350년 운젠지옥도 그 산자락에 켜켜이 쌓인 시간과 사람, 그들의 한까지 품었다. 온천이 화산의 재앙에서 건져낸 보상이라지만 화산의 재앙 그 자체인 곳도 있다. ‘미즈나시혼진’. 운젠지옥을 올려다보는 후겐다케산 아래엔 화산재로 파묻힌 가옥들이 보존돼 있다. 가장 최근인 1991년까지 이어진 화산폭발로 지붕만 남고 모든 게 마그마에 잠겨버린 마을. 이곳의 화산은 오늘도 멈추지 않는다. 숨쉬기를 막는 유황냄새도 멈추지 않을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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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년 일본인 도자기 취향 그대로 ‘오카와치야마’
아기자기한 소품에 유난스러운 일본이다. 지역별로 특색이 있겠지만 나가사키의 유별난 소품이라면 단연 도자기다. 지역적으로 구분하자면 두 군데 정도를 띄울 수 있다. 하나는 아리타도자기, 다른 하나는 이마리도자기.
일본 도자기술이 한반도에서 유입된 것쯤은 다 아는 상식이지만 아리타도자기는 더 연관이 깊다.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건너간 도공 이삼평(?∼1655). 일본 백자가 그에 의해 완성됐다는 건 정설이 됐다. 당연히 억지로 끌고갔겠지만 이 도공에 대한 일본의 대우는 깍듯했다는 얘기는 신빙성 있는 야설이다. 아리타시 곳곳에선 이삼평의 이름이 쉽게 눈에 띈다.
손닿을 곳에 있는 도자기는 이마리시 오카와치야마에서 만질 수 있다. 마을에 발을 들이면 우선 눈을 사로잡는 게 있다. 삼면을 둘러친 병풍 같은 기암 경관이다. 오카와치야마는 그 속에 안기듯 숨어 있다. 이곳 도자기도 조선과 무관치 않다. 역시 임진왜란 때 끌고 온 도공들을 정착시킨 곳이기 때문. 17세기 후반 나베시마번이 막부와 조정에 바치던 도자기가 이곳에서 만들어졌단다. 나베시마번 영주는 비밀스런 도지기법을 아리타에서 이곳으로 옮겨놓고 품질과 기술 유지에 심혈을 기울였다. 가장 신경 쓴 건 보안. 뭐든 밖으로 유출되지 않도록 험난한 지형을 이용, 장인들을 감시했다는 것. 그러고 보면 삼면 병풍 외관에도 사연이 있었다. 도공들이 도망가지 못하게 둘러친 이른바 ‘바리케이드’였던 거다. 마을 입구엔 연고를 알 수 없는 도공들의 무덤도 있는데 간간이 비문 속 ‘고려인’이란 단어가 눈에 든다.
슬쩍 가져다 자기 것으로 만드는 일본인의 거친 손버릇은 종종 작품을 내놓기도 하는데 오카와치야마가 그렇다. 언덕길을 따라 골목골목 조성된 크고 작은 수십 개 도자가게들은 저마다의 형태로 객을 맞는다. 흔히 도자기 하면 떠올려지는 부담스러운 형체나 무게, 질감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 이마리도자기의 특징. 컵·밥공기·접시·다기세트 등 생활필수품부터 화병·종·벽걸이 등 감상용 미술품에 이르기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이마리도자기는 매끈한 백자가 특징. 여기에 빨강·초록·노랑의 삼색을 기본으로 삼은 디자인이라면 이로나베시마로 분류한다. 고유의 나베시마 전통이 그대로 유지되는 외형도 있다. 산화코발트의 감색으로 채색하거나 청자 원석을 잘게 부순 유약을 발라 구워낸 경우. 이렇게 빚은 푸른 비취색 광택의 키워드는 ‘신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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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늘한 불빛’ 세계적 야경이라면 ‘이나사야마’
도쿄타워와 같은 높이의 이나사야마 전망대는 360도 어느 한군데 막힘없는 경관을 제공한다. 한마디로 화려하지만 소박하다. 그저 자체 발광일 뿐 눈 닿는 곳에 튀어 보이려고 만들어둔 장치는 최소한 없다는 얘기다. 서늘한 불빛의 파노라마다. 지금 자신이 누군지 알고 싶다면 선뜻 그 앞에 나서는 것이 좋다. 점점이 박힌 크고 작은 야광 앞에 사람은 그냥 어둠일 뿐일 테니. 다소 야속하게 들리겠지만 빛과 어둠이란 게 그렇다. 빛에 취하려면 기꺼이 어둠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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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엔 짬뽕도 있다
사실 국내서 나가사키 유명세는 엉뚱하게 번졌다. 어느 날 밀려든 ‘나가사키짬봉’이란 식료품 브랜드 덕이다. ‘짬뽕은 빨갛다’는 철칙에 도전한 하얀 국물의 역설. 이쯤에서 나가사키 하면 자동적으로 튀어나오는 짬뽕 얘기를 해보자. 중국에는 자장면이 없다지만 나가사키에는 하얀 짬뽕이 있다.
나가사키는 중국음식점의 감초인 짬뽕이 시작된 곳이다. 전 세계 문물을 닥치는 대로 받아들였던 나가사키가 일본 유일의 개항장인 데다가 중국과 가까운 이점을 업고 쉽게 받아들인 중국음식이다. 여기서 일본인의 장기는 다시 발휘됐다. 일본화 과정을 거쳐 마치 그들의 것이었던 양 한 것. 어원은 ‘밥 먹었니’라는 뜻의 중국 남방 사투리인 ‘챠뽕’(吃飯). 이것이 일본인에겐 뒤섞인다는 의미의 ‘잔폰’으로 들린 거다. 죄다 뒤섞인다는 뜻의 짬뽕은 한국으로 들어오면서 관용적 표현으로 사용됐다. 유래야 어떻든 짬뽕은 중국·일본문화의 융합에 나가사키라는 도시적 특징까지 결합한 국제어가 됐다.
여느 도시처럼 나가사키 한복판에도 차이나타운은 있다. 1700년대 초반 조성된 중국인 거주지. 바꿔 말하면 나가사키짬봉의 발원지다. 나가사키의 차이나타운은 역시 일본이 아닌 듯 보인다. 하지만 그 거리 상점마다 뽐내듯 내세운 짬뽕은 분명 나가사키의 그것이 맞다.